Sunday, 25 April 2010

Good Bye Ainsley 아버지 사랑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너무 참혹한 모습이셨다. 뒤로 눕지도 못하시고, 수많은 진통제와 약물로 인해서, 눈도 뜨시지 못하고, 목소리도 못내시고, 2-3초 이상 대화가 힘든 모습. 도움없이 한스푼도 뜰수 없으시고, 이제 발도 못 움직이시는 모습.
내가 너무 사랑하는 분이, 나의 와이프에게 소중한 아버지가 이러한 고통을 당하시고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좀더 살아계실때 찾아 뵙고, 연락도 드리고 할껄 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수십년 앞으로 그럴 시간이 남았을꺼라는 헛된 믿음만 가지고 있었다.
내가 떠난다고 하자, 섭섭해 하시던 모습.
함께 기도할때 힘도 없으시지만, 나의 손을 꼭 잡아 주시고, 내 볼에 키스를 해주시던 그분이 너무 그립다.
친구가 병의 치유를 받은후 마시라고 보내준 엄청 비싼 샴페인을 가족이 모였을때 함께 열었다. 그리고 그분은 말을 했다.
"이 와인은 내 친구가 치유받은 후 축하하며 마시자고 선물로 준 와인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병원에서 살아서 나가지 못할것입니다. 나는 나에게 향한 치유가 영적인 치유인것을 믿고, 나는 이 치유 받았으며, 이제 이 와인을 함께 나눌수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나누엇다. 다들 웃는 모습이었고, 밝게 얘기는 하고 있었지만, 거기에 있던 모든사람들이 속으로는 다들 가슴을 찢고 울고 있는 것을 볼수 있었다... 잠깐 고개를 돌릴때마다 사람들의 코들은 빨게지고, 다들 한손으로는 젖은 휴지를 들고 있었다.
너무 짧은 방문을 마치고 공항으로 떠나는 길에, 새벽 3시였지만, 병원에 들러, 창문틈으로 그분을 마지막 모습을 보고 왔다. 다시 차로 돌아왔고, 나는 대성 통곡을 하였다. 울음이 그치지 않는다,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곧 다시 내려가겠지만, 그때까지는 계시지 않을것같다. 비록 천국에 가시는 길이지만, 마음이 아프다. 살아계실때 더 잘하지 못한 내가 너무 야속하고 밉다.
힘들어 하는 장모님과 와이프는 어떻게 하지? 나도 이런데.....
열심히 살고, 내 주변에 소중한 분들이 살아 계실때 최선을 다해야 겠다....
그분이 너무 보고 싶다...

Friday, 23 April 2010

교목

School Chaplin.

장인어른이 학교 교목이셨다.
사실, 교목이라는 것에 대해서 잘 몰랐고, 목회는 교회를 통해서 하는 것만이 목회라는 초등학생과 같은 생각이였다.

장인에 대해서 처음 얘기를 들었을때도 그랬다. 영어 교사였다가, 트레이닝을 받고, 교목으로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듣고, 아 정식 신학 루트를 밟지 않으셨구나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보면, 정말 귀한 사역이였다는 것을 느낀다.
천명가량 되는 학교에서 또한 매년 100-200여명의 학생들이 새로 학교에 들어 오고.
또한 학생 한명당 가족들이 2-3명있다고 하면, 장인의 사역은 약 3-4000여명을 돌보고, 매년 300여명의 새로운 가정들을 돌보는 사역이였다. 보통 작은 교회의 한정된 사역보다 훨씬규모가 있다.

거기에, 모든 사회적으로 여러 다른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며, 또한 이들과 카운셀링과 장례식, 결혼식 집례등을 통해 희노애락을 함께 한다는 점

불신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할수 있는 학교의 정책이 있고, 이를 승인하는 사람들이 자녀들을 보내기때문에, 이부분도 좋다.

무엇보다, 학교에 사시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가정들에게 크리스챤으로 사는 본을 보이는 삶을 사는 부분이 가장 장인과 같은 교목에 대한 존경심이 생긴 이유중에 하나이다. 공예배에만 말씀 전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삶을 함께 하며, 모범적인 삶을 사는 모습... 쉽지 않은 모습이지만, 이렇게 15년 이상 사셨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

Saturday, 17 April 2010

죽음


가까운 친지들의 죽음이 잦아지면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천안함 사건도 있고, 폴랜드 대통령 일도 있고.



가장 가까운 촌수의 (장인어른) 죽음이 더욱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와 가까웠고, 나의 아내의 아버지, 가장 가까운 사람이였기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아직 젊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아직 20여년은 건강하게 살것으로 알았던, 그러한 분의 이러한 죽음을 앞둔 상황이기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죽음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이 없이, 말을 하기는 쉬웠다.
-하나님이 우리보다 그분을 더 사랑하셔서, 옆에 두고 싶어하신다-
-이제 고생 끝이야, 이제 준비 되신거야-
-죽을 시기를 아는 것이 준비도 하실수 있고, 축복이지, 갑자기 죽는것보다-

이러한 로맨틱한 죽음에 대한 말들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나 할수 있는 말들인듯 하다.

영화 그랜 토리노 (Gran Torino)에서 젊은 신부가 한국전쟁을 경험하고, 가장 가까운 아내와 사별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고, 무시당하는 것 처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의 위로라 하는 말들이 이렇게 무관해보인적이 없다.

- 죽음 - 은 무엇인가?
경험하지 않고, 가까운자의 죽음을 경험해보지 않은 우리들에게 죽음은 멀리 있는것 같다. 죽음에 대해서 할말도 별로 없다.

하지만, 우리는 다 죽는다.

시편 90편 10절-12절
"The length of our days is seventy years - or eighty, if we have the strength; yet their span is but trouble and sorrow, for they quikly pass, and we fly away. Who knows th epower of your anger? For your wrath is as great as the fear that is due you. Teach us to number our days aright, that we may gain a heart of wisdom. "

오래 살아야 80이라는 이 말씀. 고통과 슬픔뿐인 이 삶..
다 죽는 우리의 삶. 또한 가까운 사람들을 보내야 하는 우리들....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며 모든것이 헛되도다', 라는 말이 나올수 밖에 없을듯 하다.
남는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가?



우리 삶에는 두가지 시계가 돌고 있다. 우리가 태어나서 부터, 우리의 나이를 알려주는 시계, 하지만,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는 우리의 육체의 죽음의 시계또한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태어나는 것은 순서가 있지만, 그 뒤로 가는 시계가 00:00:00 이 되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1분뒤일찌, 10년뒤일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전도서 11장 9절-12장을 보자.




청년이여 네 어린때를 즐거워 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눈이 보는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줄 알라, 그런즉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으로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로 말미암아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또한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정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

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지고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자는 지혜자이어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들을 구하였나니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느니라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우리는

(1) 창조자를 기억하며, 그를 경외하여야 한다.

(2) 지혜를 찾고 구해야 한다. (시편 90편 12절 -Teach us to number our days aright, that we may gain a heart of wisdom. " )


청년의 때가 헛되다는 것은 현재 우리의 삶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닌, 우리의 열정과, 패기, 삶에 대한 환상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 삶에 마스터 플랜을 갖으신 주님이 계시기에... 지혜를 가지고 그분을 보는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생각보다 짧을수 있고, 길수도 있다.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와 멀지 않다.


다행히 예수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우리는 영적인 죽음을 면한다.


할데인 목사님과 18개월전 골드코스트를 열심히 자전거를 타던때가 기억난다. 몇마일 뛰시던 모습도 기억난다. 앞으로는 함께 하지 못할 시간들..... 하지만, 창조자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자녀로 삼으셨기때문에, 그분의 죽음은 부활의 삶의 시작일것이다.


죽음은 우리와 멀리 있지 않다. 창조하시고, 삶을 주신 분은 죽음또한 허락하시는 분이시며, 그분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죽음을 준비하자. 다 끊어버리고, 헛되이 여기라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정욕을 헛되이 여기고, 지혜로 그분과 동행하며, 자기 계획데로 살지 말자는 의미이다.








Thursday, 15 April 2010

천안함

드디어 군인들의 사체를 발견한듯 하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하겠다. 한사람 한사람마다 사랑하는 아내, 자녀, 부모, 친지, 형제, 남매들이 있었을텐데.....

Saturday, 10 April 2010


로마서 6:15-23

의의 종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2)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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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untary slavery.

이스라엘에는 노예제도 이 있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는 맞지 않는 것이였으나, 이스라엘 전통이었으며, 신약에서도 (빌레몬서의 예) 볼수 있다.

모세를 통하여 내려진 종 (slavery)관련된 율법은 노예제도를 신규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너무 무질서하게 퍼져있는 이스라엘 내부의 노예제도에 질서를 두기 위해서 내리신 율법이다.

출애굽기 21장와 신명기 15장 등에 노예제도에 대한 구절들이 있다.

어떻게 노예가 되는가?
1. 전쟁을 통해서 포로가 될수도 있으며
2. 전통적인 노예집안
3. 가족들이 인신매매 (요셉의 예)
4. 자발적인 노예
5. 빚 때문에 등등 노예가 되곤 하였다.


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여섯 해 동안 너를 섬겼거든 일곱째 해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 것이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빈 손으로 가게 하지 말고

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 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오늘 이같이 네게 명령하노라

종이 만일 너와 네 집을 사랑하므로 너와 동거하기를 좋게 여겨 네게 향하여 내가 주인을 떠나지 아니하겠노라 하거든 송곳을 가져다가 그의 귀를 문에 대고 뚫으라 그리하면 그가 영구히 네 종이 되리라 네 여종에게도 그같이 할지니라


종이 자유를 얻을수 있는 9가지

1) 빚의 청산 등을 위한 구원
2) 7년째 (출애굽기 21:2-4) – 히브리 노예만
3) 주빌리 (50년에 한번씩 – 안식년 7번 보내고 다음해)– 히브리
4) 부상 by 주인
5) 도망 (빌레몬서 – 오네시므로)
6) 여종이 마음에 안들었을 때 (출애굽기 21장 7-11절)
7) 도둑질 한 금액등 청산시
8) 주인의 죽음
9) 하나님의 명령 (예레미야 34-8-10절)

예수님도 종으로 비유를 많이 하셨고, 하나님의 종으로써 임무를 수행하셨다.


베드로전서 2: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갈라디아서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신명기에서 본 자발적인 노예처럼, 예수그리스도는 죄의 종이였던 우리를 해방시키셨고, 자유를 주셨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이러한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라고 경고를 한다.

오히려 로마서 말씀처럼,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순종의 종
의의 종이 되라 명하신다.


자유의지에 대한 질문을 우리는 많이 했었다. 왜 하와가 사과를 먹을줄 알면서 자유의지를 주셨는가? 자유로운 우리의 자발적인 예배와 순종을 원하셨던것이다.

자발적으로 종이될 자유를 주신것이다.

노예중에 자발적으로 주인에게 바친 종들과 같이.


이러한 자발적으로 순종의 종, 의의 종이 된다는 것은 영생을 누릴수 있다는 약속이 있다.
그냥, 예전 노예제도처럼, 죽을때 까지 종이 되고, 자녀들까지 종이 되는 그러한 기약 없는 묶임이 아니다.
또한 육신의 종은 천한일을 시키지만, 하나님은 주님의 종에게 고귀한 일을 맡기신다. 사람을 살리는 일...


우리는 우리를 하나님의 종으로 드려야 할것이다.

종이란 무엇인가?

A person who is a property, wholly subject to master.
종의 소유권은 주인에게 있다.

Wednesday, 7 April 2010

나는 할수 없어요.









배경 :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땅을 취하였으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잊고, 망령되이 행하자, 하나님은 미디안 족속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고 계셨다.





하나님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서 하신 말씀은





사사기 6장 12절 : 여호와의 사자가 기도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 이 상황은 이 말이 나올 상황이 아니였다. 왜냐하면 사자가 나타났을때에 기도온은 미디안 족속에게 밀을 빼앗길까봐 다른곳에 숨어서 타작을 하고 있었다. )

하나님께서 그를 큰 용사라 부르신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보시고 하신 말씀이며, 또한 여호와께서 함께 하실때에 모든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시기에 하신 말씀 이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부르셨을때 바로 자기가 할수 있느냥 나선 사람을 찾아 보기 힘들다.

자기 앞길을 계획하고 나갔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부르시지 않으신듯 하다.

이스라엘 백성중에, 큰 꿈을 꾸고 야망을 갖은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명예를 위해서, 공부하고, 지위를 얻은 바리새인처럼. 430년간 애굽족속에게 핍박을 받았을때도, 그들중에 분명, '안중근' 같이 (독립을 위해서, 해방을 위해서, 자신의 노력을 한) 사람이 있었을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삶에 계획을 가지고 있던 사람을 찾으셔서, 함께 논의하시고, 작전을 짜시고 진행을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셨다.

모세와 같이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곤을 애굽에서 구합니까?") ,
다윗(양치고 있다가 사무엘을 만났다) 처럼,
요셉(종으로 있다가 이스라엘 백성을 흉년에서 구하였다.) 처럼
그리고 기도온과 같이 (숨어있다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들에게 힘을 주시고,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사사기 7장 2절에 "여호와께서 기도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손 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라"

모든 영광과 찬양은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하며, 결코 그 영광과 찬양을 가로채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용납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을때, 기도온이 사전에 계획을 가진 자였다면, 이렇게 말했겠지-

"이제야 오셨네요. 여러가지 미디안을 이길 방법은 염두해놓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런 방법으로 그들을 물리치려 하오니, 뒤에서 잘 밀어 주세요. 혹시 제 전략가운데 빠뜨린 부분이 있다면, 그부분은 채워주세요. 즉, 후방을 맡아 달라는 거죠. 가능하시겠죠? 우리가 미디안을 이기면, 멋진 제단하나 지어드리겠습니다. ... etc"

가끔씩 문제를 대할때에 드리는 우리의 기도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받는 것은 나뿐일까?
너무 자주 우리도, 우리 계획을 가지고 앞서 나가면서, 이런식의 기도를 하지는 않는지?

"하나님 뒤좀 맡아 주세요,,,, 혹시나 해서요. 제가 새운 계획이 정말 완벽하긴 한데, 혹시 모르니까 도와주셔야 해요.... 잘 되면, 감사헌금 드리고, 열심히 봉사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셨다라고 간증도 여러번 하겠습니다.....그정도면 피차 괜찮은 딜이지요?"

이러지 말자


우리의 일상가운데 또한 특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부르심이 있을때에라도 우리의 마음은 시편 27편을 기록한 다윗의 마음과 같아야 할것이다.

하나님의 전적인 계획에 향한 겸손함과,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능력에 대한 전적인 의지함에서 오는 담대함의 조화를 이룬자가 되야 할것이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내 생명을 내 대적에게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 함이니이다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








Saturday, 3 April 2010

길 잃은 한마리 양


마태복음 18장:12절-14절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같이 이 소자중에 하나라도 잃어 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이 구절또한 어린 시절 유치부때서부터 많이 들었던 말씀이다.

그림으로도 많이 봤었고. 99마리를 뒤에 두고 양 한마리를 찾는 목자, 그리고 찾은 후에 웃는 모습으로 나온 그림또한 많이 보았다.
많은 말씀이, 이 한마리 양에 많은 집중을 했던것이 기억이 난다.
많은 분들이, 이 한마리의 양은 우리라고도 설교를 하셨다. 우리를 사랑하시사, 큰 희생을 치루시면서, 우리를 구하셨다는 각도로도 많이 들었다.
또한 회개에 대한 중요성으로도 많은 설교를 들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영혼의 중요함.
이 모든것 말씀이 감격을 준다. 하지만, 한가지 다른 각도로 이 말씀을 보았다.
특히 14절 말씀, "이와 같이 소자중에 하나라도 잃어 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비즈니스를 하다가,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때가 많다. divest라는 말. 여러 사업을 진행할때에 사업에 결과가 예상만큼 나오지 않거나, 한 사업 분야에 집중을 하려고 할때 하는 전략중에 한가지이다. 그 사업부를 떼내어 매각을 하던지 정리를 해버리는 것이다. 그 작업을 통해서, 사업은 좀더 streamline이 되고, 운영하기 수월해지게 되는 것.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100마리 양 중에 길을 잃은 양이라면, 두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100마리 다 하나님것, 즉 주인의 것이였던것이다. 성경은 여기서 단순히 목자라고 설명하지 않았다. 한글로는 어떤 사람이라고 하였지만, 영어로는 확실이 이 사람이 owner라고 나와있다. (a man owns a hundred sheep.)
이 말씀을 다른 각도로 보자고 하였다. 소유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서 이것을 보게 된 것이다.
펜이 12개 들어가는 필통이 있다. 그런데 그중에 한개를 잃어 버렸다면, 필통이 흔들릴때마다 빈 공간으로 다른 펜들이 굴러서 소리가 나고, 필통을 열었을때 비었다는 느낌이 난다. 기분이 그렇다. 좋다는 느낌이 없다. 가치가 떨어진다.
무소유를 말하는 책을 소유하고자, 무소유 소유 작전을 펼치는 사람들. 8천원이면 살 책 가격을 15만원까지으로 올려버리는 인간의 소유 욕심.
우리 하나님은 더 하시다. 소유 의식 및 보호 의식의 왕이시다.
양 100마리가 다 주인 것이였으며, 100마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잃어 버린 한마리를 찾아 나선 주인의 마음,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그 계획 가운데, 있는 것은 그것 누구던, 하나님은 결코 잃지 않으시겠다는 그 소유인, 주인의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어떠한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그분의 소유를 지키고, 구해내시겠다는 말씀이다.
요한 복음 6장 39절을 보자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God Shall not lose none of all that he has given Jesus.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소유하신 영혼들을 결코 잃지 않으시고, 믿음을 주시고, 그분을 만나게 하시고, 영접케 하신다는 말씀이다. "
부활절 아침에 이 말씀을 보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우리와 같은 인간을 모습으로 오셨다.
하나님과 영원히 떨어져야 했던 저주 받은 우리를 그분의 소유로 삼으셨다는 것이다.
그분의 소유인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서 계획하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의 삮을 치루시고, 우리를 그분의 품으로 부르셨다.
우리의 힘이 아닌, 능이 아신 그분의 단독적인 unilateral한 사랑으로 우리를 소유 삼으신 것에 우리는 무한 감사를 드려야 할것이다.
그분의 소유라 함은
우리가 그분의 object 라는 것이다. 토기장이 앞에 놓인 진흙과 같은 존재. 하지만 걱정할것 없다, 우리를 거칠게 사용하시지 않으시도, 양자 삼으실 정도로, 사랑과 인자함으로 또한 간혹 징계를 통해서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써 영원히 함께 하시며, 모든것을 주시겠다고 하신 말씀이 있다.
우리가 often 거꾸로, 하나님이 우리의 object인냥 살면서, demand할때가 있다. how dare!!!! 감히 어떻게 우리가 그럴수 있을까?
이 부활절 아침. 주님 앞에 우리를 소유 삼으시고, 구하신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나아가며, 주님의 소유로써 우리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겠다.

Saturday, 27 March 2010

3월 25일

3월 25일

오전에 잠이 오지 않았다. 2시간 만에 깨서, 새벽 4시 50분, 숙소 앞에 있는 사랑의 교회로 향하였다. 교회에 들어서자, 파이프오르간에서 들려오는 찬송가 소리를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두가지로 눈물이 흘렀던 것이었다.
한가지는 그동안 이렇게 따뜻하고, 아비가 자녀를 품듯이 품어 주시는 하나님의 품을 기억지 못하고, 방황을 하며, 일 때문에 바쁘다 하며, 놓쳐버린것이 대한 슬픔이 있었고, 또 한마음은 지금 현재 이렇게 고소를 당하고, 처음으로 가보는 경찰서에 피의자로 가야 한다는, 지난 40일간 힘들었던 감정들이 섞여서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새벽기도를 드리고, 숙소에 돌아온후, 다른 것은 하지 않았고, 쉬고, 나갈 준비를 하였다. 조금 일찍 출발하여서, 9시 20분에 도착하였다. 시간적 여유가 남아서, 또한 신경을 다른 곳에 두고자, 구두방에 가서, 구두를 딲고, 커피샵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9시 50분, 공지연 변호가와 만나서, 들어가게 되었다.
경찰서 안에는 경찰대학 출신의 다른 변호사가 만나서, 여러가지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고소장이 12월에 접수되었는데, 이제야 온다고, 경찰이 뿔이 났다는 것이었다.
다음주에 바로 사건을 검찰로 넘기려 했다는 것이었다.
김준하 반장이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른 사람을 조사 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기실에서, 기다리며, 변호사들과 계속 얘기를 나누었다.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변호인단부터, 경찰까지 나를 다 영국 회사 직원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였다. 다들, 나는 외부 컨설턴트이며, 전혀 이 사건에 연루될 이유도 없으며, 단지 통역만을 했다는 것을 알자, 그럼 왜 내가 고소 되었는지 이해가 안간다는 것이였다.
11시 10분, 김준하 반장과 마주 앉았다.
조사는 빨리 끝났다. 경찰은 나에게서 나올것이 없음을 깨닫고 허탈해 했다.
한가지 안 사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녹췌록이 내가 혼자 발표를 했던 12월 19일 행사가 아닌 11월 행사였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영국인 이사또한 함께 있었기 때문에, 나는 단지 통역이였다는 것이 성립이 되는 것이였다. 하지만 또다른 한편으로는 그 행사는 완전 한국회사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찬 행사였다. 참석자들이 한국 회사와 영국회사에 대한 비판으로 일색이 되었던 행사였기 때문이였다…
신상을 알려주고, 이름, 국적, 주소, 소속 회사, 전화번호 등등을 알려주고,질문이 시작되었다.

Q: 왜 이곳에 와서 조사 받고 있는지 아느냐?
A: 명예훼손이라는 것으로 알고 있다.

Q: 거기에 대한 본인 생각은 어떤가?
A: 놀랐다. 나는 H사 직원이 아니며, 단지 통역을 한것이지, 명예훼손을 할 이유도, 해서, 얻을 것도 없다.

Q: 컨설턴트인데, 단순 통역이 말이 되느냐? 인수 합병이나, 다른 부정경쟁행위에도 개입된 것이 아니냐?
A: 아니다, 11월 행사때는 통역으로만 갔으며, 부정 경쟁 관련 부분은 나는 배재되었었다.

Q: 녹취록을 보면, 통역을 하는 것이 나오지 않았다. 너 생각을 가지고 명예훼손을 하려고 고의성이 있지 아니하냐
A: 그곳 참가자들도 알고 있었고, 질문이 왔을때에, 계속 귓속말로, 통역을 영국 이사에게 했기 때문에, 그것이 녹음기에 잡혔을 이가 없다.

Q: 내가 한 말 중에 명예훼손이 될 만한 내용들이 많다.
A: 간호사들이 먼저 질문 한것이고, 그때 장난이 아니였다. 한국 회사에 대한 불만 뿐 아니라, 영국 회사에 대한 불만등이 심하게 나왔었다. 또한 같은 류의 질문을 계속 해왔으며, 간호사들이 영국 회사가 돈을 받지 않는 다른 것을 믿지 않았다.

Q: 한국 회사 사장을 알고 있냐?
A: 이름만 들었지, 모른다, 연락 한적도 없고, 이메일을 주고 받은 적도 없다.


Q. 사건에 대한 생각은 어떻냐?
A: 내가 왜 여기 온지 모르겠다. 나는 통역이였을 뿐이며, 영국 회사가 필요할 때 정보 제공만을 했을 뿐, 부정경쟁이나, 다른 부분에 전혀 연루 된 것이 없다.

Q. 마지막 할말은
A:영국 기업은 상장사이며, 대형 회사이며, 명망있는 회사이며, 순수하게 했을것이다. 나에게 대한 고소장은 취소 되야 한다.


이렇게 끝났으며, 옆에 변호사가 마지막 진술서에 확인을 해주었다.

이것이 끝나고, 경찰은 “나에게 뭐 전혀 관련이 없내요. 이게 검찰로 가서, 출국금지나 이런거 내려지면, 손사장만 손해를 보겠네요. “

라고 얘기가 끝났다. 경찰서에서 나오면서, 변호사와 같이 점심을 먹고, 한숨을 돌렸구나 생각을 했는데, 경찰이 마지막에 한 얘기를 기억했다. 바로 하루전날 한국회사가 두가지로 추가 고발을 해왔다는 것. 그것은 내가 지원했던 부분이였다- 한국 회사 설립 부분.
영국 회사가 나에게도 책임을 물을수도 있는 내용들.

관련해서, 이제 끝났다 했는데, 또 추가로 진행이 된다는 부분에, 머리가 돌 것 같았다.
그래도, 경찰을 만나고 오니 한편 마음은 놓였다. 또한 경찰에게 나는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인식을 주었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이 되었다.

서점에 가서, 책을 사고, 숙소에 와서, 그냥 그데로 잠에 들어버렸다. 긴장이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저녁 약속을 마치고, 마사지를 받고, 저녁에 업무를 시작했는데, 다시 산넘어 산이라고 난리가 났다.

경찰이 빨리 사건을 해결을 하려는 듯, 영국 회사의 한국 지사장을 금요일 바로 출두 명령을 한것이다… 또 다른 사건의 시작이며, 이메일이 십수통이 계속 왔다 갔다 했다.
이부분은 나의 책임이 또한 있는 부분이였기 때문에, 계속 스트레스가 지속되었다.
거기에다가, 좁은 방에서, 이메일만 계속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였다. 속이 터질 것 같았고, 신경 쇠약에 걸릴 것 같았다.

Wednesday, 24 March 2010

3월 25일새벽

조금 있으면, 경찰에 출두를 하게 된다.
머리속에 너무나도 많은 생각들이 있어서, 잠에서도 금방 깼다.

이상황에서는 어떻게 말을 하지, 저런 질문은 어떻게 대답을 하지등, 머리속에 든 생각이 너무나도 많다.

어제 변호사와의 미팅에서도 들어났듯이, 내가 기억을 못하는 것이 너무 많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는 것도 많고.

하지만, 묵상한 간수장에게 은총을 받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요셉과 같이
바울 앞에서 하나님께서 할말을 하게 하신것처럼, 나또한도, 그렇게 하나님께서 하실 말씀을 주시고, 어눌한 대답가운데, 경찰이 진실을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봤으면 좋겠다.

Thursday, 11 March 2010

책 읽자

[미션라이프] 삼일교회 전병욱(48) 목사는 한달에 100여권의 책을 직접 구입한다. 인터넷 서점보다는 전체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에 간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광화문 교보문고와 생명의말씀사에 가서 20만원에서 40만원 상당의 책을 산다. 그 중 80%가 일반 서적이다. 일단 구입한 책은 대부분 읽는다. 그에게는 3개의 서재가 있다.

A관과 B관으로 나눠 있는 교회와 집에 각각 한 개씩 있다. 아마도 수만 권의 장서가 있겠지만 몇 권인지는 세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 청파동 삼일교회 B관에 있는 전 목사의 서재에는 각종 책들이 빼곡하게 차 있는 책장과 함께 자전거 및 등산 용품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는 요즘 등산에 푹 빠져 있다. 자전거도 열심히 탄다.

삼일교회는 출석 성도 2만여 명의 대형교회다. 이 거대한 교회를 담임하는 전 목사는 어떻게 그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더구나 그는 일주일에 10번 이상의 설교를 한다. 주일에는 각기 다른 내용으로 3번 설교한다.

삼일교회 성도뿐 아니라 매일 전세계에서 3만여 명이 인터넷을 통해서 전 목사의 설교를 듣고 있다. 한 번이라도 대충 말씀을 전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전거를 타고, 등산을 즐기며, 매주 10여회의 설교를 준비하는 전 목사가 그렇게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는 비결은 성실성에 있다.

그는 새벽 2시40분에 일어나 3시까지 교회에 온다. 새벽 예배를 인도하는 것 외에 12시간 동안은 서재에서 책을 읽는다. 심방도 안한다. 다른 목회자들과도 거의 어울리지 않는다. 이 시간 동안에는 책을 읽고 설교준비 하고 또 책을 읽는다. 그는 스스로 학자적 삶을 산다고 말한다.

교회는 ‘잠수함’이다. 잠수해서 책을 보고 연구하는 곳이다. 책뿐 아니라 동영상으로 세미나도 듣고 영화와 TV 드라마도 본다. 삼일교회는 성도 평균 연령이 약 27세인 젊은 교회다. 담임 목회자가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서재에 있는 운동화는 조던 상표다. 청바지는 스키니진을 입는다. 설교 용어도 신세대 어휘를 사용하려 한다. 자연 젊은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책을 즐겨 본다. 최근에 전 목사는 중 2학년생들이 좋아하는 100곡의 음악을 다운로드 받아서 듣고 있다. “제 나이가 이제 40대 말입니다. 솔직히 하나도 재미없지만 그냥 듣습니다. 맞춰야지요.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어야지요.” 그러고 보니 전 목사 휴대폰 컬러링도 엠씨몽의 노래다.

전 목사는 독서에도 경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수많은 책을 읽다보면 각 책들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알 수 있다. 새 책을 접하면 그 책의 독특성과 차별성을 집중해서 본다. 차이점들은 금방 찾아낼 수 있다. 그러다보니 한권의 책을 빨리 읽어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책을 잘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맹점이 있다. 어쩌다 읽은 한 권의 책에서 감명 받으면 그것 가지고 실컷 이야기다.

목회자라면 그 한 권의 책을 기준으로 설교한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보면 한심하다. 이미 2, 3년 전에 감명 받은 것이기 때문에 ‘저 사람이 새삼스럽게 지금 왜 저런 이야기하지?’라고 생각한다. 전 목사는 자신의 설교 한 편에는 적어도 4, 5권의 책이 녹아 있다고 말한다. 그는 기독물, 일반물 따지지 않고 베스트셀러는 일단 무조건 읽는다.

전 목사의 서재에 있는 책들을 보면 책갈피 위쪽이 접혀 있는 것들이 많다. 조그만 수첩에는 읽은 책 가운데 감명 깊은 구절을 적어 놓은 메모가 빼곡하다. 설교 때마다 책을 즐겨 소개한다. 그가 추천하는 책은 판매량이 일시에 올라갈 정도로 영향력이 있다. 성도들에게 늘 독서를 강조한다. 올바른 독서는 믿음을 고양시키고 섭리 가운데 돌아가는 세상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설교자로서 전 목사는 이야기를 잘 사용한다.

스토리텔링에 강하다. 수많은 설교가 가능한 것은 이야기에 능하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를 자기의 체험을 통해서 만들 수 없다. 책의 도움을 받는다. 책 속의 이야기들을 자기화 할 때에 주어진 상황에 맞는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했던 이야기를 또 하면 식상하기 때문에 좋은 설교를 위해서는 엄청난 독서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는 왕성한 저자다.

그동안 40여권의 책을 냈다.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됐다. 많이 썼을 때에 좋은 것이 나온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 시대에 맞는 언어를 사용한다. 동시대적인 책, 동시대적인 설교가 중요하다. CCM(comtemporary christian music)과 같이 CCB(comtemporary christian book)가 나와야 한다고 믿는다. 전 목사는 자신이 쓴 모든 책이 검증된 것이라고 말한다.

해보고 나서 되는 것을 말하고 썼다는 것이다. 그래서 힘이 있는지 모른다고 진단한다. 효과적인 독서를 위해서는 좋아하는 작가군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것은 그가 수많은 책들 가운데 좋은 책을 고르는 비결이다. 한 권의 책을 잘 쓴 작가의 다음 책도 좋게 마련이다. 유진 피터슨이나 댈러스 윌라드의 책은 무조건 산다.

이들은 독자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다. 존 맥스웰은 별로다. 너무 짜집기한 흔적이 크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열심히 산다. 무엇을 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려 한다.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한다. 책을 읽더라도 끝장을 보며, 자전거를 타더라도 죽기까지 탄다. 하나를 고갈시켜야 더 좋은 것이 나오기 때문이다.

‘약하지만 하나님 손에 붙들려 있는 사람’이 그가 추구하는 일생의 모토다. 오늘도 전 목사는 새벽 2시40분에 일어나 교회로 온다. 그리고 서재에 앉아 12시간 동안 책을 본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

Friday, 5 March 2010

John Russell

참 좋아 보였던 사람이였는데, 이런 상황이 왔다.

조금 이익 보려고, 조금씩 문서를 위조 한듯 한데, 그래도 큰 피해가 가지 않기를 바란다.

내일만 할뿐, 나에대해서도 자기 편에 서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것을 통해서, 일을 할때는, 순간적으로 불이익이 있더라도, 모든 것을 100% 사실데로 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The negativity of 'tolerance'

We talk of a tolerant society.  Tolerance is one of the critical values of modern society that almost all multicultural states uphol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