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3 April 2010

길 잃은 한마리 양


마태복음 18장:12절-14절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같이 이 소자중에 하나라도 잃어 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이 구절또한 어린 시절 유치부때서부터 많이 들었던 말씀이다.

그림으로도 많이 봤었고. 99마리를 뒤에 두고 양 한마리를 찾는 목자, 그리고 찾은 후에 웃는 모습으로 나온 그림또한 많이 보았다.
많은 말씀이, 이 한마리 양에 많은 집중을 했던것이 기억이 난다.
많은 분들이, 이 한마리의 양은 우리라고도 설교를 하셨다. 우리를 사랑하시사, 큰 희생을 치루시면서, 우리를 구하셨다는 각도로도 많이 들었다.
또한 회개에 대한 중요성으로도 많은 설교를 들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영혼의 중요함.
이 모든것 말씀이 감격을 준다. 하지만, 한가지 다른 각도로 이 말씀을 보았다.
특히 14절 말씀, "이와 같이 소자중에 하나라도 잃어 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비즈니스를 하다가,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때가 많다. divest라는 말. 여러 사업을 진행할때에 사업에 결과가 예상만큼 나오지 않거나, 한 사업 분야에 집중을 하려고 할때 하는 전략중에 한가지이다. 그 사업부를 떼내어 매각을 하던지 정리를 해버리는 것이다. 그 작업을 통해서, 사업은 좀더 streamline이 되고, 운영하기 수월해지게 되는 것.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100마리 양 중에 길을 잃은 양이라면, 두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100마리 다 하나님것, 즉 주인의 것이였던것이다. 성경은 여기서 단순히 목자라고 설명하지 않았다. 한글로는 어떤 사람이라고 하였지만, 영어로는 확실이 이 사람이 owner라고 나와있다. (a man owns a hundred sheep.)
이 말씀을 다른 각도로 보자고 하였다. 소유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서 이것을 보게 된 것이다.
펜이 12개 들어가는 필통이 있다. 그런데 그중에 한개를 잃어 버렸다면, 필통이 흔들릴때마다 빈 공간으로 다른 펜들이 굴러서 소리가 나고, 필통을 열었을때 비었다는 느낌이 난다. 기분이 그렇다. 좋다는 느낌이 없다. 가치가 떨어진다.
무소유를 말하는 책을 소유하고자, 무소유 소유 작전을 펼치는 사람들. 8천원이면 살 책 가격을 15만원까지으로 올려버리는 인간의 소유 욕심.
우리 하나님은 더 하시다. 소유 의식 및 보호 의식의 왕이시다.
양 100마리가 다 주인 것이였으며, 100마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잃어 버린 한마리를 찾아 나선 주인의 마음,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그 계획 가운데, 있는 것은 그것 누구던, 하나님은 결코 잃지 않으시겠다는 그 소유인, 주인의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어떠한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그분의 소유를 지키고, 구해내시겠다는 말씀이다.
요한 복음 6장 39절을 보자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God Shall not lose none of all that he has given Jesus.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소유하신 영혼들을 결코 잃지 않으시고, 믿음을 주시고, 그분을 만나게 하시고, 영접케 하신다는 말씀이다. "
부활절 아침에 이 말씀을 보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우리와 같은 인간을 모습으로 오셨다.
하나님과 영원히 떨어져야 했던 저주 받은 우리를 그분의 소유로 삼으셨다는 것이다.
그분의 소유인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서 계획하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의 삮을 치루시고, 우리를 그분의 품으로 부르셨다.
우리의 힘이 아닌, 능이 아신 그분의 단독적인 unilateral한 사랑으로 우리를 소유 삼으신 것에 우리는 무한 감사를 드려야 할것이다.
그분의 소유라 함은
우리가 그분의 object 라는 것이다. 토기장이 앞에 놓인 진흙과 같은 존재. 하지만 걱정할것 없다, 우리를 거칠게 사용하시지 않으시도, 양자 삼으실 정도로, 사랑과 인자함으로 또한 간혹 징계를 통해서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써 영원히 함께 하시며, 모든것을 주시겠다고 하신 말씀이 있다.
우리가 often 거꾸로, 하나님이 우리의 object인냥 살면서, demand할때가 있다. how dare!!!! 감히 어떻게 우리가 그럴수 있을까?
이 부활절 아침. 주님 앞에 우리를 소유 삼으시고, 구하신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나아가며, 주님의 소유로써 우리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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