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17 April 2010

죽음


가까운 친지들의 죽음이 잦아지면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천안함 사건도 있고, 폴랜드 대통령 일도 있고.



가장 가까운 촌수의 (장인어른) 죽음이 더욱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와 가까웠고, 나의 아내의 아버지, 가장 가까운 사람이였기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아직 젊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아직 20여년은 건강하게 살것으로 알았던, 그러한 분의 이러한 죽음을 앞둔 상황이기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죽음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이 없이, 말을 하기는 쉬웠다.
-하나님이 우리보다 그분을 더 사랑하셔서, 옆에 두고 싶어하신다-
-이제 고생 끝이야, 이제 준비 되신거야-
-죽을 시기를 아는 것이 준비도 하실수 있고, 축복이지, 갑자기 죽는것보다-

이러한 로맨틱한 죽음에 대한 말들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나 할수 있는 말들인듯 하다.

영화 그랜 토리노 (Gran Torino)에서 젊은 신부가 한국전쟁을 경험하고, 가장 가까운 아내와 사별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고, 무시당하는 것 처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의 위로라 하는 말들이 이렇게 무관해보인적이 없다.

- 죽음 - 은 무엇인가?
경험하지 않고, 가까운자의 죽음을 경험해보지 않은 우리들에게 죽음은 멀리 있는것 같다. 죽음에 대해서 할말도 별로 없다.

하지만, 우리는 다 죽는다.

시편 90편 10절-12절
"The length of our days is seventy years - or eighty, if we have the strength; yet their span is but trouble and sorrow, for they quikly pass, and we fly away. Who knows th epower of your anger? For your wrath is as great as the fear that is due you. Teach us to number our days aright, that we may gain a heart of wisdom. "

오래 살아야 80이라는 이 말씀. 고통과 슬픔뿐인 이 삶..
다 죽는 우리의 삶. 또한 가까운 사람들을 보내야 하는 우리들....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며 모든것이 헛되도다', 라는 말이 나올수 밖에 없을듯 하다.
남는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가?



우리 삶에는 두가지 시계가 돌고 있다. 우리가 태어나서 부터, 우리의 나이를 알려주는 시계, 하지만,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는 우리의 육체의 죽음의 시계또한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태어나는 것은 순서가 있지만, 그 뒤로 가는 시계가 00:00:00 이 되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1분뒤일찌, 10년뒤일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전도서 11장 9절-12장을 보자.




청년이여 네 어린때를 즐거워 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눈이 보는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줄 알라, 그런즉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으로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로 말미암아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또한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정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

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지고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자는 지혜자이어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들을 구하였나니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느니라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우리는

(1) 창조자를 기억하며, 그를 경외하여야 한다.

(2) 지혜를 찾고 구해야 한다. (시편 90편 12절 -Teach us to number our days aright, that we may gain a heart of wisdom. " )


청년의 때가 헛되다는 것은 현재 우리의 삶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닌, 우리의 열정과, 패기, 삶에 대한 환상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 삶에 마스터 플랜을 갖으신 주님이 계시기에... 지혜를 가지고 그분을 보는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생각보다 짧을수 있고, 길수도 있다.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와 멀지 않다.


다행히 예수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우리는 영적인 죽음을 면한다.


할데인 목사님과 18개월전 골드코스트를 열심히 자전거를 타던때가 기억난다. 몇마일 뛰시던 모습도 기억난다. 앞으로는 함께 하지 못할 시간들..... 하지만, 창조자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자녀로 삼으셨기때문에, 그분의 죽음은 부활의 삶의 시작일것이다.


죽음은 우리와 멀리 있지 않다. 창조하시고, 삶을 주신 분은 죽음또한 허락하시는 분이시며, 그분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죽음을 준비하자. 다 끊어버리고, 헛되이 여기라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정욕을 헛되이 여기고, 지혜로 그분과 동행하며, 자기 계획데로 살지 말자는 의미이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

The negativity of 'tolerance'

We talk of a tolerant society.  Tolerance is one of the critical values of modern society that almost all multicultural states uphol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