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12 December 2017

Built environment and theology

December 12th



It has been awhile that I had given an urban planning a serious thought since my graduate school time.
I almost felt that my master degree was a waste as I could not find the link between that and my interests through the theological lens.  Through this church planting in the middle of one of the megacities of the world was a great hands-on experience, but discussions of a city and its social meaning, opportunities and threats to faith and church, could not be imagined further. That is until I started my reading into these pieces. 

I remember doing a module on green theology and the definition of stewardship- God-given responsibilities to mankind. It was refreshing to see that modern theology trying to revisit some of the earlier assumptions on our relationship with the world and the integral parts of the world. 

These articles expanded my view to even on the built environment. 

Sheldrake's piece was an eye-opener. How different zoning policy of governments actually has separated and disintegrated the sense of communities. The convenience of public transportation, and the urban sprawl meant that people' place of living, leisure, consumption, place of worship being separated, and the traditional sense of community is lost. He mainly looked at children and their play. What we see of our children and their place of a game has changed. We as a contemporary generation, feel the responsibility towards our children and their safety, but in fact, we are creating, distrust, void, empty space particularly in the inner city, which is the reverse of what the parents wanted. More and more empty areas, and the zoned spaces per different usages means that the disintegration will intensify. 

Looking at Seoul, and how my children fit in the city, this is definitely what I witness too. We pick our children's playdates. We drive some distance to drop them off, and rather than hanging with the parents of my boy's friend, I go to a coffee shop nearby and drink coffee, check my SNS until the pre-arranged time is over, and pick my children up. I never let my children go to playground on their own, for fear of any unwelcome attention/threat of lawless drivers and bikers endangering their lives. By doing so, I am putting them in a bubble. Safe, for now, maybe, but for a long term, it is not. 



A little world that every family, and individual creates, it is a threat to the humanity and the sense of community.  On the flip side, this is the time of opportunity. What Acts 1:8 says, reaching out to the end of World with the gospel. The world has become smaller/more individualistic, but that means that each of us, the good news bearer, our role has become more important. 




Friday, 10 November 2017

은사에 대한 생각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님이 지혜의 말씀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님이 지식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병 고치는 능력을, 어떤 사람에게는 기적 행하는 능력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하는 능력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을 분별하는 능력을, 어떤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방언하는 능력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을 통역하는 능력을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은 같은 한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님은 자기가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이런 은혜의 선물을 나누어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12:8-11‬ ‭KLB‬‬
http://bible.com/86/1co.12.8-11.klb


요즘, 성경적인 단어들의 현대화/recontextualisation 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고 있다.

성령의 은사들의 경우도 그러한 것으로 그리스도 가치 위주로 볼 필요가 있을듯 하다. 물론 성경 문자 그대로의 성령의 역사하심도 현 시대에 있지만 새롭게 봐야 하는 것도 있는 것 같아.

방언을 방언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자신과 하나님만이 아는, 조금은 이기적인 기도로 보면 어떨까?

회중 대표 기도를 하는데, 자신의 삶의 문제를 가지고 기도 할수 없지 않는가?

이러한 개념으로 보면 어떨까나?

Wednesday, 1 November 2017

Discovering the Bible in the Non-biblical World




The Author is as an Asian feminist theologian, tackle the issue of hermeneutics from very realistic questions.

The starting questions are:
Is the current biblical interpretation, embrace all the readers?
How has the biblical hermeneutics changed over time, and what were its relationships with socio-political forces; including patriarchal traditions, colonialism, and many other historical phenomena?
Are there not marginalised groups of people that the mainstream hermeneutics ignored?
To engage much deeper to look at the questions,
Are the readers in the East experience and come to the similar interpretation to that of the readers in the West?
Are the female experience of the Bible and its interpretation the same as the male's experience?
Are the people of different race read and interpret the bible the same?
The cultural context changes over time, are the hermeneutics remained the same or have changed, or even has been a tool for justification?

Just as the title of the book suggests, the author tackles this head-on.
She looks at how the interpretation was manipulated with different readers with privileged positions, and very often, this causes the readers in the non-biblical world uncomfortable as the book remains the 'foreign'

The hermeneutics that the slave-masters' use of the bible to justify their actions, cannot be shared by the people with their ancestors who were the receiving end of the biblical hermeneutical abuse.

The hermeneutics that the dominant men used to justify their 'rule over the society' cannot be shared by the female believers.

The hermeneutics that the colonial merchants and navy chaplain used cannot be shared by the peasants.

The hermeneutics that the bourgeogies used cannot be shared by the proletariats.

The modern strands of theologies such as black theology, feminist theology, liberation theology, minjung theology, environmental or green theology are largely due to the disjuncture that the readers and believers felt about the mainstream hermeneutics.



Sunday, 1 October 2017

성경에서의 실사 과정

프로젝트 실사.

일을 하다 보면, 제안서를 쓰거나 실사를 해야 할때가 있다.

그런 과정, 복잡한 것은 아니지만, 기업이 투자를 하기 전에 과연 이 것이 올바른 투자 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에 보내면서 요청한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그러한 새밀함이 보인다.

1. 마크로 투자 환경.
- 지형 살피고
- 인구, 땅의 비옥함
- 인구의 강함과 약함

2. 세부적인 내용들 (진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 
- 도시
- 방어체계

3. 이 모든것에 증거
- 땅의 과일. 

교회의 재정이나, 우리 삶에 작은 결정또한 전략적이여야ㅜ한다. 

하지만 그 뒤에ㅜ하나님이 계심을 아는 것이ㅜ가장 중요하다. 



“그 땅의 지형을 살피고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강한지 약한지, 인구는 얼마나 되는지, 그들이 사는 땅이 좋은지 나쁜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도시에 살고 있으며 거기에 성벽이 있는지 없는지, 또 그 땅 토질이 비옥한지 메마른지, 나무들은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고 오너라. 그리고 잊지 말고 그 땅의 과일을 가져오너라” (그 때는 포도가 익기 시작하는 계절이었다).”
민수기 13:18-20 KLB
http://bible.com/86/num.13.18-20.klb

Monday, 11 September 2017

분쟁조차 하나님께서 이용을 하신다

바울과 바나바의 의견 불이치의 경우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었다.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동의가 없을수 있지? 한 하나님, 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가는 것이 아닌가? 
리더에 대한 순종은 어디가고,, 

하지만 이유여하를 떠나, 이는, 복음의 확장의 기회가 되었다. 

하나님의 나누시는 방법....  신기하다. 

하지만, 궁금엔, 바울과 바나바는 화해를 (바울의 마가를 받아줌) 하게 되고, 이또한 놀랍다.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서다
(행 15:36)○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행13:4행14:6
(행 15:37)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행 15:38)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행 15:39)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행 15:40)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행 15:41)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Sunday, 10 September 2017

군중이란??

“그렇다고 자기를 증거하시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시고 열매 맺는 계절을 주셔서 선한 일을 하시고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만족하게 하셨습니다.” 두 사도는 이 말로 겨우 군중들을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하였다. 그때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유대인들이 몰려와 군중들을 선동하여 자기들 편에 끌어들여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내다 버렸다.”
군중심리란? 

숭배했다가, 죽이려고 하는 이들의 모습.
인기나, 사람의 시선이 아닌 하나님을 의식해야 함을 다시 보여준다.
다른면으로는 나는 또한 이렇지는 않은지? 심지가 굳은 사람이 되야 한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이사야 26:3

넘어지고 일어나고 이런 반복은 이제 그만. 
의지 사용이 필요. 

Sunday, 27 August 2017

신독 (愼獨)과 경외

초등학교 도덕시간에 배웠던 개념이 있었다. 
중용에 나오는 신독(愼獨)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보거나 듣는 사람이 없는 곳에 혼자 있는 때에도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나 생각을 하지 않는 마음과 태도를 말한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때 배웠던 이것은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실패할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혼자 있을때, 바른 마음을 갖으려고 노력을 하였고, 누구에게 보여지기 위해서, 행하기 보다는 나 자신의 양심을 위해서, 도리에 맞게 행동하려고 하였다. 

이것이 신앙안에서는, 신전의식의 개념과 융합이 되어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보거나 듣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기 때문에,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나 생각을 하지 않는 다라는 것. 

성경에서 누구보다, 요셉의 모습이 이러하였다. 아무도 없을때,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이 있었을때에, 그는 하나님의 의식하였다.   다윗의 인생의 실패 또한도, 이 모습이 부족하였었다. 그 순간, 그 벌거벗은 여인을 본 그 순간, 신독이 약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너무나 아픈 짐을 그는 지게 되었다.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非道也. 是故君子, 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
“도”란 잠시도 떠나지 않는다. 떠나 있다고 한다면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누구도 보지 않는 곳에서 경계하고 삼가며, 그 누구도 듣지 않는 곳에서 두려워하고 염려한다. 숨은 곳(아무도 안보는 데)에서 보다 자신의 모습이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없고, 은미(역시 아무도 안보는 데)한 데에서 보다 자신이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혼자 있을 때 더욱 삼가해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다.

신앙인으로서, 이것은 어떻게 봐야 할것인다. 신앙인으로의 integrity 를 말을 하는듯 하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컨셉트를 완전히 포함하는 단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경외였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것. 무소부재하시며, 창조자 되시며,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떨림, 사랑의 표현인 그 경외였다. 

어느곳에서나, 특히 혼자 있을때 우리의 행동이 경외의 잣대라는 것이다. 

혼자 있을때, 

여호와를 의식하는가? 

그러는 사람에게 그분의 친밀하심, 보호하심, 배푸심, 구원하심, 긍휼이 여김, 인자하심, 지혜가 가득할 것이다. 

일이던 가정 생활이던 어떤것 이전에 경외를 회복하라. 

아멘.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시편 130: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시편 25:14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시편 33:18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시편 34:7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시편 34:9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시편 103:13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시편 103:17
여호와께서...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시편 115:12-13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시편 147:11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신명기 6:24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만을 경외하라 그가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하셨으나열왕기하 17:39
주를 경외함지혜요욥기 28:28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시편 111:10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시편 115:11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잠언 14:2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 잠언 19:2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이사야 11:3

Saturday, 26 August 2017

Jethro's advice - Good or bad

Exodus 18 decribes Jethro, the father in law of Moses, joining Israelite camp. He sees what God has done, and joins in temporarily and returned home.



While he was with Moses, he sees that Israelites waiting to see Moses with their disputes, and Jethro sees that this is wrong. He claims "What you are doing is not good,,,, now obey my voice, I will give you advice, and God be with you.... So Moses listened to the voice of his father in law and did all that he had said.

What Jethro commanded was that Moses to appoint representatives to deal with small issues that arises in their camp. This would relieve Moses of the heavy workload, and also people can have their grievance dealt with timely.

Many commentators describe this chapter as if Jethro was another wisdom of God to govern over the people of Israel.  Jon Bloom, a staff writer on desiringGod.org says, God speaks with clarity and preciseness, but regarding the secondary or administrative things he leaves much to our figuring. In other words, God cares about 'What' but we are to figure out using God given resources including people, wisdom, technology etc to come up with 'how' .

On the one hand, I can understand where this is from. We have our freewill, and God has implanted in us many different talents to bring forth God's glory in our life settings.
Moses obeyed his father in law, and everyone seems to be happy in the end.

But everytime I read this passage, I am perplexed who Jethro is, and whether his advice was God given or a human understanding that caused the gap to develop. The gap between God's clear message and commands to have Israel remain pure before God's sight, particularly during this time of nation building, where common identity centred around God was key to bring together the unity.

Exodus 33:11 says the Lord used to speak to Moses face to face, as a man speaks to his friend.
What was the criteria for the appointment of judges? Would they have similar extent of focus on God as Moses?

Considering the timing of this, I believe that despite the long wait for the people to see Moses, he should have remained as the only judge.

1) Usefulness of the wait: People's waiting, would have been beneficial as it would have given people time to come to a conflict resolution.

"Matthew 5:25 - Settle matters quickly with  your adversary who is taking to you court. Do it while you are still together on the way"

2) Purity of the message: the slave mentality is demonstrated time and time again, by the people. Judges and the tribe leaders were the same. How would the judges conduct this divine and essential role?
When Miriam and Aaron rebelled against Moses, God was clearly on Moses side, protecting Moses' sole leadership over the people. Why all of sudden would God change the stance?

3) God cares about 'how', not just 'what' : God did not just tell people to build a tabernacle but explained how to build it. This was demonstrated during this time of nation building, and identity (as God's chosen people) building period, God was intervening into the lives of Israel in the deepest and most delicate ways.

4) Jethro - He did not stay with the chosen people, but he returned to his land. At the end of the day he is a gentile, a Midianite. (ver 27 "Then Moses sent his father in law on his way, and Jethro returned or sent back to his own country - why was this so?)

5) People's sinning - After this, God gives the ten commandments and all other commands regarding the tabernacle, priesthood and many others. Despite the laws being issued, people sinned by making an image of God, golden calf, and resisting Moses and God. In retrospect, this would have been inevitable, but there may have been some correlation between this and the reduced interaction between Moses and the people

Jethro's advice is predominantly praised as a God given advice to Moses. I want to think again....



Wednesday, 16 August 2017

왕 같은 제사장. 제사장 같은 왕

1 Peter 2:9 But you are a chosen people, a royal priesthood, a holy nation, God's special possession, that you may declare the praises of him who called you out of darkness into his wonderful light.

Revelation 5:10 "You have made them to be a kingdom and priests to serve our God, and they will reign on the earth"

1. God has made us a royal priest.

2. Royal, as we partake in the sovereign power of God through Jesus Christ.

3. Priest, as we undertake the role to give ourselves, our lives and jobs to bring glory and praise to God.

4. Royal Priesthood. This does not have a priority, as two terms are the same. However, human mind plays a trick, and we feel that the first word as an adjective support the latter position - therefore latter being more important.  It isn't.

5. Priestly Kingship.  Should we use the similar approach, we can even call it this way. 

6. Examples 1. - Melchizedek - King and priest. 

7. Example 2. - David - King and worship leader 

8. Example 3. - Jesus - who brought the new rule/new commands/renewed worship and praise. 

There is no hierarchy. We are called to be a priest of God bearing the influence in the world, and a worker of God with worship in our centre of all. 



Monday, 7 August 2017

크리스챤이 일을 하는 이유 (팀 켈러)

팀 켈러의 Every Good Endeavour 에는 그는 서론에 이렇게 기록을 하였다.

몇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리스트를 적었는데,. 중요한 것은 이중 한가지 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일수도, 모두 다 있을수 있다는 것....


크리스챤이 일터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목적은...

(1) 사회에 하나님 중심의 사회 정의 구현을 위해서
(2) 정직하게 일을 하며, 동료 및 사람들의 전도하기 위해서
(3)  주신 재능을 발휘하여, 멋진 일들을 달성하기 위해서
(4) 창조주 하나님의 창의력으로 아름다움을 펼치려
(5)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문화에 영향력을 끼치지 위해서
(6) 복음으로 변화된 삶에, 일을 통한 시련과, 성공을 통해서, 자기 영적 성장의 기쁨과 감사한 삶을 살기 위해
(7)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통하여, 내가 열정을 갖고, 기쁘게 할수 있는 것을 해보기 위해서
(8) 돈을 많이 벌어서, 많이 헌금하며, 나누기 위해서...


이 리스트를 보면,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이 틀린 것은 없는것 같다. 어떤 교파, 또한 어떤 가정 환경에서 자랐냐에 마음에 비중이 다를듯 하다.

바른 마음으로 일을 한다면, 사실, 이 모든것이 발란스 있게 공존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 사실, 발란스를 잡기가 어렵다.  (번호는 위에 리스트와 연계)

- 사회 정의 구현을 (1) 이루기 위해서 일을 한다 하면서, 막상 업무에서  기쁨없이 하며, 주변 사람들의 의욕을 상실하게 하며, (7) 재능 없지만, 의욕만 가지고  (3)일을 하는 크리스챤 직장인들을 본다.

- 직장에서도 전도만의 목적 (2) 으로 일을 하고, 점심시간이던, 업무 시간이던, 전도만을 목적으로 외치지만, 막상 업무에서는 윤리적이지 못하여, 선한 영향을 끼치지 (5) 못하는 크리스챤 직장인도 많이 봤다.

- 어느 사람은 모든 것이 자기 영적 성장으로 (6) 도구와 기회로써, '나'중심의 삶으로, 팀원들이나, 동료/조직의 공동체 의식, 공동 목표나, 조직 돌아보지 못하고, 모든 것이 '나' 와 '나의 신앙' 인 친구들도 보았다. 자신의 영적 컨디션에 따라서, 주변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사람들..

- 돈을 벌어서, 많이 나누겠다 (8) 하면서, 비양심적인 일이나 (1) 자신의 영적 성장 (6)은 등한시 하는 사람도 많이 보았다. 나중에는 돈이 우상이 되어 버리고.


로마서 8:28Korean Living Bible (KLB) 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28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획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결국 모든 일이 유익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을 사랑하고!!
(2) 그분의 계획대로
(3) 부르심을 받은 데로



- 일터에서의 우리의 마음은 이것이 중심이 되야 한다.

내가 누구 인지 알아야 한다.
(1)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선 그분의 희생을 이해하고, 구원의 확신이 필요]
(2) 그분의 계획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주권 인정./ 삶의 우선순위 변화]
(3) 주신 재능을 통하여, 혹은 말씀을 통한 계시를 통하여, 부르심에 확신하여야 한다. [ 우리에게 주신 재능과, 관심또한도, 하나님의 부르심의 흔적이다. ]

재능이 메시지 이다. !!!

- 예를 들어, 부엌에서 요리사 보조로 일하고 있다고 보자. 요리사가 나에게 칼을 주어주었다. 내 앞에는 야채가 있고.  이것은 어떤 의미 인가? 칼을 사용해서, 야채를 자르라는 의미 이다. 요리사가 말을 해주지 않았다고, 요리사가, 보여주지 않았다고 가만히 서있는 다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재능을 주셨지만,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고, 이끌어 가심을 (보여주지) 느끼지 못한다고 가만히 있으며, 시간이 재능을 좀 먹게 하는 크리스챤 젊은이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이게 뭔가?



어떻게?
(4)  결국에는 드러난다. [일을 하다가, 성과를 볼수 없을수도, 전도의 열매를 볼수도 없지만, 결국 / 즉 하나님이 판단하시며, 모든 것에는 열매가 열린다는 것]
(5) 모든 일이 [ 하나님은 완벽하시다, 하나라도 잃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6) 유익 [ 하나님 나라에 유익하며, 또한 우리의 영적인 성장에도 유익  ]

바른 중심으로 우리가 서있다면,
- 하나님께 영광, 바른 문화 정착, 바른 인간관계, 전도 효과, 물질 성과 등으로 위의 모든 부분이 해당될수 있다.

크리스챤이여, 흔들이지 마라. 일터에서, 하나님 중심을 잡아라. 그리고 윤리적으로/최선을 다하라. 결국에는 들어난다. 일터에서 바른 열매를 맺자.



Sunday, 23 July 2017

Jesus and tax collectors "Matthew 9:9-13"

The tax collectors under Roman rule, were subjects of hatred, betrayal, uncleanness for a number of reasons.

1) Their practice of acquiring unethical 'additional' money from fellow Israelites were viewed with immense hatred

2) Their collaboration with gentile and oppressive Roman rule were viewed as betrayal

Therefore they were viewed as unclean.

When Jesus called Mathew to follow him and also dining with Mathew's friends and 'sinners' - Pharisees were indignant, as described in the passage.

What would be the modern day comparison.

Looking at the dualism that is pervasive in Korean christianity, that divides spiritual work and secular work, we do see this in place all the time.

There are a few significant points.

1) Jesus approached Matthew the tax collector - Think why the writer, Matthew himself, wanted to highlight his job. This encounter highlights Jesus' acceptance of people from different occupations and lines of work.  He even met prostitute to change her, and sin no more. In this encounter, Jesus does not convict them, but simply dine with them, and the change takes place while eating together with Jesus, as we see from the Zachaeus case.

2) Other tax collectors and Sinners came to the dinner - through the link that Matthew provided.
- This is very powerful evidence that highlights the importance of marketplace ministry, where through changed, and God-centred Christian professionals, how others were able to come to Jesus and participate in the dinner. Pharisees with strong sense of hierarchical view of the professions, did not even want to do anything with the tax collectors. - shutting the door for the grace of God to flow through.  But the changed professionals, had a powerful impact in his own line of work.

3) Being with sinners do not make you a sinner. Jesus demonstrate this by interacting with them. Thessalonians 5:22 "Reject every kind evil" does not mean that 'Reject every kind of evil doers. We have this attitude how do we bring the light to the dark world. We need to reach out, but with a full armor of God.

3) Pharisees' action -  Time and time again, we see Pharisee's own standard that is ridiculed here. Through the lens of the Gospel of Matthew, yes, we do see that their action as wrong. But we may be surprised how much we are like Pharisees. We make a very quick judgement of people about what is right and wrong, hence how is deserving of my respect, care, love and who do not deserve them.
Jesus' embracing of everyone is a great example of how we ought to approach those people within our circle.

I heard of some brother in our church whose passion is graffiti across the city.  I am still not sure if I should see his work as proper work of artistic creativity or an illegal criminal activity.
However, this does not mean that I should reject him as a friend, and a fellow christian.

Conclusion:

Jesus was with the tax collectors. He called the Matthew to follow him but also bless the rest of his friends in that profession with His presence. This can bring changes to people.
The changed people in profession, have a greater impact than, religious and judgmental Pharisees.
Beware of anyone who looks down on your work, your contribution to society and your friendship circles. Also be professional, but be Spirit filled first. God will use you as a 'fisher of men', 'collector of lost souls', and a 'shepherd of His lamb'


Friday, 12 May 2017

좁은 길...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바빌로니아에서 70년의 포로 생활이 끝나면 내가 너희를 돌아 보고 나의 선한 약속을 이행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너희를 위한 나의 계획은 내가 알고 있다. 그것은 너희에게 재앙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번영을 주고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려는 계획이다.”
예레미야 29:9-11 KLB
http://bible.com/86/jer.29.9-11.klb

Tuesday, 9 May 2017

이 악에서 구원하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들에게 말한다. 너희는 나의 양떼를 흩어 버리고 몰아내며 돌보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가 행한 악에 대하여 내가 너희에게 벌을 내리겠다.”
예레미야 23:2 KLB
http://bible.com/86/jer.23.2.klb

Wednesday, 26 April 2017

아이의 수술실 밖에서....

아이가 아플때....

이 아이를 위한 나의 사랑이 부족했고,
이 아이를 위한 내 기도가 부족했다는 것을 느끼고,,,
언제나 지켜준다고 했으나, 내 힘으로도 부족한것을 느끼고...
차라리 나였으면,,,






Saturday, 8 April 2017

찬양할때 흐르는 눈물

찬양할때 감격의 눈물 귀하다...
하지만 삶에서는 얼마나 더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가? 
매 순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과 관심을 느끼며 더 깊은 감격이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을 예배때만 느끼는 그런 존재로 여긴다면, 음악에 심취한 감격의 눈물? 그냥 물일 뿐이다... 너를 변화시키지도, 너에게 새 힘이 되지도 않는, 잠시 먹고 후회하는 초콜렛일 뿐이다


Saturday, 4 March 2017

To shine God's light in darkness

“Give me wisdom and knowledge, that I may lead this people, for who is able to govern this great people of yours?’”
2 Chronicles 1:10 NIVUK
http://bible.com/113/2ch.1.10.nivuk

It is a dejavu moment. I went through this experience of dealiing with nasty business threatening to sue for a perfectly legitimate but emotionally-pride-destroying matter.

I did not want to face this anymore.  I do not want anyone sueing me, or think negatively of me. 

It feels as though it is a cross that I must bear once again,, as the situation has not light, has no leadership, and who else should assume the position. If God is placing me there to fight this fight, yes, may I be the light in the situation, and lead the people. 

God, please give me wisdom..... Humility and gentleness to come out strong from this situation. 

Thursday, 2 March 2017

오벧-에돔의 가족

오벧-에돔의 가족.


하나님의 성괘를 잘못 운반하면서, 성괘는 임시로 오벧-에돔의 가족에게 3개월 가량 맡겨지게 된다.

그리고 다시, 제대로 운반이 되면서, 다윗의 소원은 이루어 지게 된다.

그러면서도 오벧-에돔의 가족에게 하나님께서 큰 복을 주시며, 이들에 대한 말씀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역대상 26장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4절부터 8절까지 보면, 그들은 하나님으ㅣ 축복의 선물로, 귀한 아들들이 성전 문지기와, 여러가지 입무가 맡겨진다. 아이들이 재능이 많고, 인재들이 되는 것을 본다.

"62명이 중요 직책을 맡게 되며, 이들에 대해서 "이들은 모두 자기들의 직무를 수행할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 말씀은 칭한다.

우리 가족도,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시며, 우리 가족 모두가 이렇게 하나님의 일에 인정을 받기를 사모한다....
 

Thursday, 23 February 2017

로마서 14장 17~18절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이런것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은 하나니을 기쁘게 해 드릴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서신을 보내면서, 교회 내에, 유대인들과 이방인 교인들 간에 식생활 관련하여서, 분쟁이 일어난 것을 볼수 있다.

3절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지 먹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가려서 먹는 사람은 아무것이나 ㅇ먹는 사람을 비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도 받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종국에는 하나님께서 판단하신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먹든지 마시던지 주를 위해서 한다면, 이또한 선하다는 것.

나의 일에 대해서, 한국에서의 생활과, 사역과, 부모님의 지속되는 자녀들의 섬김의 깊이에 대한 염려등으로 인해서, 내가 현재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있고,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와, 이를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이 될수 있는 일이라는 것에 확신이 들지 못하기에, 지금 일들을, 지금의 섬김을 단순히 '나중 사역을 위한 준비 과정이다' 라고 치부하고, 핑계를 되는 것을 본다.

이것이 오히려 주님 앞에 영광이 되지 않은 것인데.

하나님에 직접적인 사역, 교회에서 섬김, 선교와 이러한 것들 = 유대인들의 습관
세상일 = 이방인들이 습관

으로 여겨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비록 그렇게 말씀을 하시지 않고, 모든 일에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면 된다고는 하시지만, 그럼에도, 종종 듣는 대화 가운데, 여러가지가 마음에 걸린다.

14절 "내가 주 예수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음식 자체는 더럽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그것을 더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더럽습니다"

적용을 해보면, 예수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일들은 무엇이든지 더럽지 않고, 의미가 있다라고, 보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17절 말씀 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지상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달성하고, 등등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내 자신의 삶과, 업무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 하는지, 내가 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을 가지고 나가고 있는지. 그렇다면, 이 또한도, 더럽지 않은 것이다.


Thursday, 2 February 2017

이스라엘의 우상

열왕기하 23장을 읽다가,

이스라엘 안에 있었던,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고, 죄의 뿌리가 되었던, 수많은 우상들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악한 왕족 중에, 중간 중간에 선한 왕도 있었지만, 우상을 아무도 없애지는 못하였다. 정치적인 이유이던, 어떤 이유이던, 모든것이 영적으로 연계가 되어 있겠지만.

단순히 바알(5절) 뿐 아니라 아세라 (6절)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11절에 태양을 위한 것
13절에 시돈사람과 함께하며 들여온 아스다롯
모압의 그모스
암몬자손의 밀곰

아테네가 각종 거짓신들의 본거지가 아닌거 같아 보인다.

내 속에 우상은 어떤가? 거두어 지지 않은 우상, 아직 속에서 숨어 있는 우상.

요시아는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었다.

이만큼의 우상과 죄를 두고, 내 안에서 뽑아 내기 위한 아픔과, 내면을 파헤져내는 단계가 필요하다...




Tuesday, 17 January 2017

크리스챤 직업 역량

시편 78편에서 보는 크리스찬 직업 역량
  •  

  • 연예인, 정치인 혹은 운동선수 든, 우리가 그들을 누군가를 떠올릴 때, 그 사람의 일생 중에 중요한 순간 혹은 그들이 삶을 투자하여, 이루어 낸 가장 높은 순간을 떠오르곤 한다. 운동선수에게는 올림픽 금메달이거나, 노벨상을 수상했거나, 가수라면, 빌보드 차트에 높은 순위에 오른 히트곡을 낸 순간 등을 떠오르곤 한다.

  • 환희의 순간 후에는, 그의 이름의 유산을 (legacy)를 남기려고 한다. 이것이, 인정받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서 이던, 아니면, 후손을 보존하고자 하는 진화적인 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전성기때를 알리고자 하고, 길이 기억되고자 한다. 자신의 이름을 딴 장학재단을 설립하기도 하고, 히트곡만을 모아서, 30주년 기념 앨범을 내기도 하듯이, 우리는 가장 인생의 높은 순간에 올랐던 그 순간을 기억하려고 하고, 잊혀지지 않으려고 한다.

  •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서 성경인물들을 배우면서, 우리는 다윗을 통한 하나님의 가르침이라는 20주 설교 시리즈나, 산상수훈 강해 설교등을 듣지 않고, 보통은 한 성경 인물 인생의 한 (물론 예수님을 제외하고) 중요한 순간에 대해서 배우고, 거기서 가르침을 배운다. 그래서 성경인물 한명 당 보통 생각나는 이벤트는 한가지 밖에 없다. 보통 우리는 그들의 전성기의 순간만을 기억하곤 한다. 예를 들어 솔로몬이라면, 그의 지혜가 펼쳐진 두 여인의 살아남은 한 아기를 두고 열려진 재판사건이나, 다윗이면 그와 골리앗의 싸움, 요나의 물고기 사건, 야곱과 팥죽, 사울의 다메섹 도상에서의 변화등을 배우면서, 이런 인물들의 가장 전성기 때인 한순간만을 배우곤 한다.

  • 다윗의 전성기는 언제였을까? 골리앗을 죽였을 때? 왕위의 자리에 끝내 올랐을 때? 요셉의 전성기는 언제였을까? 색동옷을 입었을 때? 형들에 의해서 팔리고 난 후에 첫 주인인 보디발에게 인정을 받아 집의 집사가 되었을 때 였을까? 억울하게 감옥에 갔지만, 성실함을 인정 받아, 다른 죄수들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되었을 때? 애굽왕의 꿈을 하나님의 지혜로 해석하고, 이집트의 총리가 된 순간일까?

  • 나는 어떻게 사람들에게 기억이 될까 라는 고민을 해보기 시작하였다. 나는 과연 인생의 전성기를 찍었는지 지난 한해, 그리고 그 전년, 그리고 나의 20대로 돌아보곤 했다. 나의 인생의 전성기는 언제 였을까? 북경TV 다큐멘터리 인터뷰때 였을까? 영국대사관저에서의 내외빈 앞에서의 젊고 당돌한 비즈니스맨 같이 보였던 발표 순간이었을까? 200여명의 일본 학생들 앞에서의 특강 순간이었을까? 테헤란로 직장인들 연합 모임에서의 찬양인도 순간일까? 아니면, 혹시 아직 전성기를 찍지 않은 것일까?

  • 내 기준이 하나님일까 사람일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인정 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외모로 사람을 취하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라면, 나의 삶에서의 사역규모, 헌금 액수, 위치, 내 사업의 매출, 마라톤을 뛰면서 모은 15개가 넘는 메달들 이런 것 들로도 하나님이 보시기엔 전성기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세상 가운데 사는 우리에게 이러한 것이 전혀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 다윗과 함께 찬양을 하였던 아삽은 그가 봐온 다윗의 삶을 한문단으로  시편 78편 70절부터 72절을 말하였다. 그는 “또 그의 종 다윗을 택하 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를 이끌어 내사 그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그르게 하셨더니,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 라고 말을 하고 있다.

  • 첫번째, 하나님이 그를 택하셨다 라고 그는 말을 하고 있다. 그의 전성기는 자신이 손으로 이루어 낸 무엇인가가 아닌, 하나님의 택하심을 말을 하고 있다. 그는 골리앗을 죽인 것이나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한 것이 자신의 전성기라고 말을 하거나, 이것이 길이 기억되야 하는 기념일로 삼고 있지 않고 있다. 그가 말하는 그의 전성기는 하나님이 그를 택하신 그 모든 순간이라는 말을 하고자 한다.

  • 두번째, 그는 양의 우리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취하셨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역과 세상 영역이 따로 구분하시지 않으신다. 이것은 사단이 하나님의 영역에 도전하고자 우리에게 심은 거짓말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양의 우리에서 그를 취하셨다고 하신다. 그가 성실하게 사자와 곰에게서 양 때를 책임감 있게 지키고 있는 그 순간 들에서 하나님께 그를 부르셨다고 말씀 하신다.

  • 종종 나의 삶의 목적이 무엇이지? 하나님께서 나를 어디다 쓰시려고 하 실까 고민하면, 현실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들을 본다. 나는 백지이며, 화가인 하나님께서 마음껏 쓰시게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하나님의 현실세계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끼며, 기도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 뭔가 직접적인 ‘사역자가’ 되야 한다며, 혼동을 주는 사람들도 있다. 경계해야 할 것이다.

  • 세번째, 양을 책임감 있게, 성실하게 키우던 다윗의 태도와 역량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데에 하나님께서는 적용을 하셨다. 양을 기르던 그를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다 라 비유하셨다. 예수님이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실 때도, 예수님은 그들의 전업에 대해서 전혀 낮게 보시지 않으셨다. 그들의 그 현장에서 가지고 있던 역량을 사용하셨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기 하리라.” 라 말씀하시며 그들을 부르셨다.

  • 한국에서는 많이 보이지 않지만, 외국에서 채용공고를 보면, 직업 타이틀과, 근무 위치나, 조건들을 기재 하고 밑에 채용하고자 하는 사람의 자격 조건 (Hard Skills), 역량이나 태도들에 대한 Soft Skills 조건들을 둔다. Hard Skills의 경우, 자격증이나, 그 직업을 진행하기 위해서, 결코 빠지면 안되는 면허나, 기술력을 말을 하고 있다. 소프트 스킬은 그 하드 스킬이 발휘 될수 있게 하는 역량, 태도, 마음 가짐 등을 말한다. 예를 들어, 시간 관념, 팀융화력, 스트레스 환경에서 적응력, 융통성과 같은 태도들을 말을 한다.
job description hard skills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 사실, 직원들을 써보게 되면, 하드 스킬은 배우면 되고, 면허를 따면 되지만, 바른 소프트스킬을 갖은 사람을 구하기는 더 어렵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의 경험에도 그렇다. 회사가 어려워졌을 때, 능력은 되었으나, 다른 팀원들과 결코 함께 일 할 수 없는 모난 성격을 갖은 직원을 가장 먼저 내보낼 수 밖에 없었다.

  • 다윗의 경우 이 두가지가 완벽하게 있었다. 그의 손에 능숙함이 (하드스킬-Hard Skills) 있었고, 자기 마음의 완전함 (소프트스킬-Soft Skills)이 있었다. 이러한 것과 함께 그는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과 친밀함으로 서있었던 영적인 스킬 (Spiritual Skills)을 갖추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데로 그를 사용할 수 있었다.

  • 이 영적인 스킬이, 영적인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나누지 않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 받을 수 있고, 모든 일에 완전하게 서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능력이며, 하나님께로 오며,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크리스찬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역량인 것이다.

  • 재미있는 것은 종종 말씀을 보면, 인생에 딱 한번만 전성기를 찍고, 사라져 버린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사울왕도 마찬가지다, 첫 왕이 된 그 순간이 전성기였겠지만, 그 뒤로 그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보면, 한 순간이 전성기가 아닌, 그들의 인생 자체가 전성기의 연속이었다.

  • 요셉의 삶 또한 가장 사랑받는 아들의 자리, 보디발의 인정받는 집사, 감옥에서 힘있었던 관리자, 그리고 총리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요셉이 그냥 사랑받는 아들의 자리에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내 인생의 전성기야’ 라고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하나님은 그리 두지 않으셨다. 안정된 공무원의 자리를 추구하는 한국 사람이라면, 보디발의 인정받는 집사 정도 하면, 개천에서 용이 난것이라 생각하고 안주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요셉이 만약 감옥에서 인정 받는 자에서 만족했다면? 그래서 다른 감옥 수들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그를 계속 움직이셨고, 그는 지속적으로 ‘마음의 완전함’으로 반응을 하였고, 그의 파란 만장 한 삶을 통하여, 뒤에서는 하나님의 민족을 가뭄을 통해 말살하고자 하는 사단의 전략를 파괴하시고,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큰 민족으로 만드시는 귀한 일을 진행하셨다.

  • 마음의 완전함을 갖고,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맡겨진 일이던 능숙하게 하며 무엇보다 영적인 능력으로 충만한 자는 인생의 그 자체가 전성기이다. 그래프를 상상해보면, 상한선 한번 찍고 그 후로 계속 나이를 먹어가며 하락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이 상한선이고, 넘치는 은혜인것이다.

  • 모르드개는 원수인 하만 앞에서 자랑스럽게 왕의 인정을 받으며 퍼레이드를 한 후 들뜨지 않았다. 원수 앞에서 상을 베푸신 하나님 앞에 감격에 젖어, 게을러지지 않았다. 에스더 6장 11절에 보면 “하만이 왕복과 말을 가져가 모르드개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되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니라” 얼마나 영광스러운 모습인가? 하지만 12절에 보면 모르드개는 원래 있었던 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갔다고 말을 하였다.

  • 에스더는 왕후가 된 후에 조금은 현실에 만족하며, 느슨해 진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민족에게 어떠한 일이 벌어 진지도 그녀는 몰랐다. 아버지와 같은 모르드개가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 쓰고 있다는 것을 듣고, 그녀는 이유를 물어보지도 않고, 좋은 옷을 시녀를 통해서 내려 보낸다. 중보를 요청하는 모르드개의 요청에, 왕을 못 본지 자신도 오래 라고, 회피하는 모습을 그녀는 보인다. 그런 그녀에게 모르드개는 강력하게 말을 한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라고 말을 하고, 감사하게 에스더는 알아 듣고 금식 중보 기도를 요청하며, 자신의 목숨을 내놓게 된다.

  • 세상에서 조금 잘 나간다고 하나님 나라 일에 관심이 없는가? 모르드개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다시 한번 생각해서 들어보라. 당신에게 하는 말씀이다.

  •  뭔가 아직은 어리숙해 보이고, 하나님이 쓰시기에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은가?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여 모든 일에 바른 태도 (soft skill) 로 능숙 해지되 (hard skill) 이 모든 것에 마음의 완전함을 (spiritual skill)을 사모하며, 매일 예배하듯 일하고, 일하듯 예배하라. 지금 일터가 성전이다. 한 달란트 받은 자 처 럼, 멍하게 있지 말라.

  •  당신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람 낚는 어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람 기르는 양치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람을 이끄는 지도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람을 돕는 복지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운전을 하는 운전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가르치는 선생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노래하는 가수등을 만들어 내실 것이다. 그분이 하실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리에서 사모함으로 최선을 다하며 그가 하나님 되심을 경험만 하면 된다.
사람 낚는 어부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 그분 앞에 확정된 마음으로, 매일 영적으로 그리고 업무적으로 전성기를 찍을 때, 하나님께서 그분의 귀한 뜻을 위하여, 당신을 사용하실 것이다. 그것이 도구 되는 삶이다.

  • 당신은 어떻게 기억에 남아질까? 당신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영적 스킬) 사람 (       )는 [소프트 스킬] (      )인가 [하드스킬]???????  아직 들어갈 단어를 모르겠는가? 아직 갈길이 멀었다. 

  •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시편 57편 7절)

Sunday, 1 January 2017

2017년 목표

1. 혼자 있을때 예배
2. 말씀과 기도로 더 자라기
3. 부모님 최대한 잘 섬기기,
4. 일본어 N3 도달 하기
5. 마라톤 1개, 하프 1개, 10킬로 1개 뛰기
6. 매출 3억원 달성하기 

The negativity of 'tolerance'

We talk of a tolerant society.  Tolerance is one of the critical values of modern society that almost all multicultural states uphol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