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26 December 2010

예수님의 고향사람이 됩시다.

마가복음 6장 4-6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 하셨다. 예언자는 자기 고향, 자기 친척, 자기가 어려서 놀던 길목에서는 별로 존경을 받지 못하는 법이다. 예수께서는 거기서 많은 일을 행하실수 없었다. 몇몇 병자들에게 손을 얹어 고쳐주신것이 전부였다. 그들의 완고함을 예수께서도 어찌할수 없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곳을 떠나, 다른 마을을 다니시며 가르치셨다.”

요한복음 4장 43-45절

“이틀후에 예수께서 갈릴리로 떠나셨다. 예수께서는 예언자가 자기가 자란곳에서는 존경받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고 계셨다. 예수께서 갈릴리에 도착하셨을때, 갈릴리 사람들이 그분을 반겼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유월절 기간동안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일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지, 그분이 누구시며 장차 무슨일을 하시려는 지 정말로 알랐기 때문은 아니었다. “



완고함과 편견으로 예수님을 대한 갈릴리 사람들

갈릴리에서 자란 예수님은 사역을 하시면서, 가장 덜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던 곳, 놀라운 치유의, 말씀 선포의 사역을 하신곳이 갈릴리 지방이었다.

이것은 예수님의 문제가 아니였다.

예수님을 받아드리는 갈릴리 지방 사람들의 문제였다.

그들의 문제는

(1) 예수님의 사역 시작 이전의 모습을 잊지 못하고, 똑같은 이로 생각을 하였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그 잣대로, 그 경험으로 예수님을 보고, 편견을 갖은 것이다.

이로 인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금의 환향에도, 이들은 완고함으로 그분을 대하였다.

Galilians who welcomed Jesus with stubborn hearts and prejudice.

The district of Galilee was quite interesting town. It is one of the least respected town, and Jesus grew up there. They must have known Jesus more than other towners, but Jesus was able to perform least number of miracles in the town. He was least welcome. Knowing what Galilee is known (almost like South Oxhey.) we think that they would be very happy to see him. But no. they had a problem.

(1) They had a prejudice, they did not differentiate Jesus before and after formal beginning of his ministry, and saw Jesus based on their experience, and with their own yardstick.

They were obstinate about it, and did not see Jesus otherwise.
예수를 자랑스러워 했지만, 단순히 그 사건으로만 자랑스러워 했지, 그 안의 의미를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요한 복음에, 그들이 예수살렘에서 한 일에 대해서 감동을 받았다 하였다. 단순히, 성전에서 상을 뒤집어 엎고, 제사장들의 권위에 도전하였다는 부분, 그 단순 사실에만, 자랑스러워 한것이다. 메스컴을 왜 탔는지, 왜 그리 해야 했는지 모르고, 단순히 메스컴을 탔다는 사실에 좋아하는 모습니다. (요한복음 2장 13-25절)

Some of them were proud of Jesus, but not because of what he was teaching, but just because he stood up to the authority of temple.

Just before, he cleaned up the mess in the field of temple, and healed many during Passover festive period.

They did not think why... he did it , or what he taught.
또한, 요한복음 말씀에는 예수님을 환영을 했지만, 그분에 대해서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분의 사역을 이해해서 환영한것은 아니라고 한다.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는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고, 즐거워 하고, 환영하고 있는 시간들이다. 휴가 기간이고, 선물도 받는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는가?

단순히, 부수적인 것 때문에, 환영하고 좋아하고 celebrate하는 것이 더 많음을 본다.

진정으로 오신 그분이 누구신지, 또한 오셔서 무슨 놀라운 사역을 진행하셨는지, 진정으로 알고 있는 자들은 많지 않은듯 하다.

Christmas

Everyone rejoices and celebrate Christmas. It is public holiday, we receive nice gifts, and people have lovely time together, but so often people have lose their focus on the meaning of Christmas.

Is it time to appreciate the love within family, yes.

Is it time to appreciate the friendship with friends? Yes.

But they are secondary – the product of something more important.

We are so used to having Christmas. We know carols,

우리가 갈릴리 사람?
우리가 갈릴리 사람처럼,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지 못하고, 편견과, 익숙함으로 대하고는 있지 않는지?



특히, 이 오전에, 전부 모태신앙자들인데, 우리에게도 주는 메세지가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예수님의 고향사람들과 같다. 그분을 알고, 그분이 하신일을 알고 있다. 우리는 몇십년동안, 크리스마스를 기념해왔는데, 그분에 대해서 익숙해져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오신 주님을 기념하는데, 우리는 이 갈릴리 사람들과 같이, 완고함으로 강퍅함으로, 또한 편견을 가지고 예수님을 대하며, 이 날을 우리의 맘데로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점검을 해봐야 한다.



Are we like Galileans?



We need to look into our hearts, and see if we are trully celebrating the Christmas for its true meaning? Are we like Galileans? Celebrating as we are used to it,,,, we think we know Jesus in and out,, we have been celebrating this day from our birth?



As a Christian, we are almost like Jesus's home town people. We know him, we know what he has done. I hope that we are not approaching Jesus as Galileeans did. - Not without stubborn heart, prejudice, or false sense of pride.



예수 그리스도,



죽을수 밖에 없었던, 우리를 살리시고, 어둠가운데 있던 우리에게 빛을 주시고, 장님이었던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시고,



(요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 1:11) 3)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4)진리가 충만하더라





우리는 요한복음 1장 11절이 아닌,

1장 12절처럼 되야 한다. We live with his power, as sons of God.



Jesus Christ our saviour



He came to earth to save us who were destined to death,

He gave us light when we were in darkness

He gave us sight, when we were blind.



Let's read John.



Let's celebrate each day, for the light and right to live as sons of God. Let's us truly remember the true meaning of Christmas and let's welcome his love, and grace to our heart wholehearted.



우리는, 예수님의 고향사람이 됩시다. 그분을 알고, 그분을 이해하고, 그분이 어떠한 일을 하신것을 알고, 그분의 모든일에 마땅한 찬양을 드립시다.



Let's be his home folks, knowing who he is, understand him, support him, represent him and most of all glorify him for what he has done, and is doing in our lives as well as in the World he created.

Sunday, 19 December 2010

'그 청년 바보의사'를 읽고

몇개월 전에 시작한 책이였는데, 왠지 읽고 싶어서, 다시 읽었다.

깊은 신학책이 아니였다, 단지, 33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세상을 뜬 한 젊은 의사의 헌신과, 하나님을 향한, 또한 찬양에 대한 열정을 담을 책이였다.

안수현 형제가 쓴 글, 다른 주변 분들이 쓴글들이 혼합하여, 정신이 조금 없었지만, 그 중에도, 하나님을 깊게 사랑하고,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 말씀을, 또한 영혼 구원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던 형제의 모습을 보았다.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사용하여서, 최선을 다하여, 섬기며, 또한 의술에만 의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계시는 하나님의 치유하심이 자신과 맞다은 환자들에게도 미치도록 믿고 기도해온 형제의 모습을 볼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단순이 돌봐야 하는 가족이 있다고, 섬기지 못하고,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있다는 핑계를 데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만, 이것은 단지 핑계일 뿐이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띵가띵가 잘먹고 잘살라고 하나님께서 이것을 허락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이 있고, 차가 있고, 건강이 있고, 적지만, 물질이 있는 이러한 축복은 다 나누어 주라고 하나님께서 주신것이라는 것을 다시 느낄수 있었다.

또한 느낀것은 이 형제는 의사가 되기 전에, 학생때부터, 이러한 열정을 가지고 섬기며, 최선을 다했다. 지금 내 마음 한켠에 있는 안이한 마음은, 내가 나중에 신학을 하고 나서, 섬기자, 내가 좀더 벌고 난다음에, 아이들이 조금더 큰다음에,,, 이러한 안이한 생각들이 나를 사로 잡고 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시간은 늙은 후가 아니라, 10년 뒤가 아니라, 5년 뒤가 아니라, 1년 뒤가 아니라, 바로 오늘이라는 이 시간이라는 것을 다시 느꼈다.

지금은 내가 부족하고 시간이 없더라도, 지금 그 시간을 쪼개어 하나님께 나아가며, 하나님의 시선이 가고 있는 영혼들을 일으킬 때라는 것이다.  "고후 6:2  보라 지금이 은혜를 받을만한 때로,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

Saturday, 18 December 2010

Loving your enemy

Loving your enemy.



요약 : 오른뺨을 때린 자들에게 왼뺨도 내어주고, 속옷을 달라는 자에게 겉옷도 줄수 있는 자는, 우리가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오른뺨을 때렸고, 속옷을 찢었으며, 못을 받았으며, 우리 죄가 그분을 십자가의 저주로 내몰았지만, 그 원수와 같은 우리를 사랑으로 감싸주시고, 은혜로 구원에 참예할수 있게 하였다는 것을 깊이 깨닫는 자만이, 그렇게 우리또한 예수님처럼, 왼뺨도 내어주고, 더 같이 걸어주고, 겉옷도 덤으로 줄수 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예수그리스도의 원수 갚음이 아닌 사랑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올수 있었듯이, 우리의 그러한 자비로운 모습으로, 우리를 공격하는 자들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볼수 있으며, 구원앞에 이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수를 갚아 버린다면, 그것으로 인하여, 한 영혼이 하나님앞에 나올수 있는 기회를, 구원으로 오를수 있는 사다리를 우리가 먼저 올랐다 하여 차버리는 행위가 될수 있다는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자. 우리가 원래 원수들이었지 않는가?


Matthew 5:38-48

“You have heard that it was said, 'eye for eye, and tooth for tooth.' But I tell you, Do not resist an evil person. If someone strikes you on the right cheek, turn to him the other also. And if someone wants to sue you and take your tunic, let him have your cloak as well. If someone forces you to go one mile, go with him two miles. Give to the one who asks you, and do not turn away from the one who wants to borrow from you.



You have heard that ti was said 'Love your neighbour and hate your enemy.' But I tell you: Love your enemies and pray for those who persecute you, that you may be sons of your Father in heaven. He causes his sun to rise on the evil and the good and sends rain on the righteous who love you, what reward will you get? Are not even the tax collectors doing that? And if you greet only your brothers, what are you doing more than others? Do not even pagans do that? Be perfect, therefore, as your heavenly Father is perfect.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에게 우리는 똑같이 대적하지 말고, 오히려 내어주라라는 의미.

This scripture tells us to refrain from taking revenge, but rather, give what our enemies want.



이는 우리가 단순히 인내로, 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오기로 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변화가 있어야 이것이 가능한것이다.

We know that this is beyond human ablility and patience. It is in our nature to take revenge, and at least wanting to take revenge. (Example of this girl who was killed by a failed asylum seeker, who was given right to remain in the UK for he has young family. Whole of UK is upset with human rights law, which prevented us taking relevant action on the aggressor.



왼뺨을 맞았다고, '아 성경에 오른쪽도 내놓으라고 했지' 그래, 내어줘야 겠다. 그리고 오른쪽 뺨까지 데주는 것이 아니라...



We can't just get hit and think 'oh, hold on the scriptures said I should give the other



첫째, 우리의 잘못으로 왼뺨 맞을 짓을 하면 안되고 (Be Perfect, therefore, as your heavenly Father is perfect. What good does it bring if you are punished for your wrong doing?)



둘째, 우리의 잘못이 아닌, 의를 위하여 받은 박해인 경우, 우리는 오히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용서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If we are being persecuted for being right, then we ought to pray and forgive.



이는 온전히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게 깨달은 자만이, 그 사랑의 의미를 알고, 그 사랑 안에 거하며, 우리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왼뺨, 오른뺨, 왼발, 오른발에 못을 박았지만, 그의 사랑으로 우리가 용서함을 받았다는 빚진 마음을 아는 자만이,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This does not come easy, but only those who received and knows that

1. We used to be the aggressor

2. We deserved to be retaliated

3. But God forgave us and showed us grace.

4. The love of Jesus lives with us, and we live on borrowed life.



Those know fully understand our 'past' can do this. They can do this easily.



We were the ones who hit Jesus, who struck Jesus, who nailed him.



그런 자들은, 우리를 때리는 자들에게도, 자비함과, 용서하는 마음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으며, 왼뺨을 맞더라도, 그 사람을 놓치지 않고자, 그 사람에게 죄가 쌓이지 않고자, 그사람에게 내가 갖은 사랑이 전달이 되고자, 오른 뺨까지 맞는 챙피함을 받더라도, 끝까지 매달리는 것이다.



With mercy, forgiving hear, we may be hurt but because of the love for that person,

(1) to save them,

(2) to have them understand the love of Jesus we possess,

(3) and not to cause that person to sin further.



We, with love God gives us, we can turn ther other cheek





Rev. Son Yang-Won, is well known for his steadfast faith he held onto during five years of his hardship. He was incarcerated by the Japanese colonialists for refusing to worship the Japanese Shinto god.

He loved anybody and everybody including such social outcasts as lepers. His love of others was so special that people started calling him "Atomic Bomb of Love." In one example, when two of his sons were slain by his son's own friend for ideological differences, Rev. Son forgave the murderer for his crime, and soon adopted the criminal as his own son. The former killer later became a preacher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우리의 겉옷조차 내주며, 억지로 1마일 가자는 사람에게 2마일을 가는 일또한, 우리의 오기로, 인내로, 처음에는 시작하겠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저절로 나와야 하는 태도 인것이다.



Compared to what Jesus had to, what rev. Son had to do, getting hit, or giving up your tunic is so much easier.



이러한 모습을 가장 잘 그려낸 비유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



<읽기>(사 53: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 He was despised and rejected by men, a man of sorrows, and familiar with suffering. Like one from whom men hide their faces he was despised, and we esteemed him not.

4. Surely he took up our infirmities and carried our sorrows, yet we considered him stricken by God, smitten by him, and afflicted.

5. But he was pierced for our transgressions, he was crushed for our iniquities; the punishment that brought us peace was upon him, and by his wounds we are healed.



6. We all, like sheep, have gone astray, each of us has turned to his own way; and the LORD has laid on him the iniquity of us all.

7. He was oppressed and afflicted, yet he did not open his mouth; he was led like a lamb to the slaughter, and as a sheep before her shearers is silent, so he did not open his mouth.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그리 하셨고, 우릴 살리셨다.



그리스도를 알기 이전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하였는가?

우리의 무지로, 지은 그 죄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셨는데,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은 예수 그리스도였다.



그가 왼뺨을 때리고 그를 반하였던 우리를 그와같이 Eye for eye로 나오셨다면,,,,, 그와 우리와의 관계는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잡혀가시면서 “Put your sword back in its place, for all who draw the sword will die by the sword. Do you think I cannot call on my father, and he will at once put at my disposal more than twelve legions of angels? But how then would the scriptures be fulfilled that say it must happen in this way?'



그가 우리를 사랑하시고, 모든 악행또한 받아주시는 넓은 사랑 (love as wide as it is)을 보여주셨기에, 우리가 그분 앞에 기도를 할수 있으며, 그분과 함께 살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또한 아직 하나님을 모르고 아직 우리를 모르는 자들에게 예수그리스도께서 하신것 처럼, 보여야 한다.



Love and obedience for the Father's will!!! - dominated his life, his action, that even when on the cross he forgave them “Luke 23:34) So did Stephen.



이 모든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Grace' 이다. - unmerited favour.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자들만이,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은혜를 배풀수 있는 것이다.



예배소서 2장 말씀



1.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다.

2. 우리가 어둠을 따랐으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운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고린도 전서 10장 23절부터 33절도 비슷한 맥락의 말씀이라.



유대인으로써 먹으면 안되는 음식들 특히 이방신에 제사물로 드려진 음식의 경우, 정하지 않다고 여겨졌으나. 바울은 이는 그들의 tradition에 있는 것이기때문에, 중요하지 않은 부분때문에, 그들의 영혼을 놓치지 말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31절 만일 내가 감사핳ㅁ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여기에 보면, 할수 있으면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그들로도 구원을 받게 하라 – 이것이 Key인것이다.





사도 베드로또한 베드로 전서 3장에 비슷한 말씀으로 당부를 한다.



8절 :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ㅗㅂㄱ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 원수를 갚도록 우리가 부르심을 받고, 은혜를 먼저 받은 것이 아니라, 오희려 그 반대로, 원수 갚은 것을 마치려,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고, 먼저 은혜를 받았으며, 그 은혜를 또한 베풀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We were not given grace to retaliate, we were not called before than others to take revenge, and close the door behind us, but it is the opposite. We are to put an end to hatred and revenges, as the ones who received underserving grace. That is our responsibility.



12절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을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 의인의 용서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이다.

Our intersession, prayer, and forgiveness go longer.



스데반의 기도,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하며, 치는 자들에 대한 기도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We need to remember this.



This week is Christmas week. We should spend this week thinking about the love and grace of Jesus. Giving thanks for his patience, peace and for forgiveness he showed on us who were the one 오른뺨을 치고, 속옷을 달라하였으며.



기도 : 예수님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묵묵히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심에 감사합니다. 우리또한도 당신처럼, 아직 당신들을 모르는 자들을 위해서, 성숙하게, 용서하며, 사랑하며, 원수를 갚지 아니하고, 당신이 우리를 받아주신 것처럼, 받아줄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Tuesday, 14 December 2010

내 할일은 내가 하기

상처다.

가장 용기를 받아야 할 사람에게서, 제대로 찔렸다.
다시는 부탁하지 말자. 지금까지 15년동안, 혼자도 잘 해왔다.
앞으로도 내가 하자. 미루지 말자.

Saturday, 11 December 2010

머리속에 음악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또한 나의 무드에 따라서, 머리속에 여러가지 다른 음악에 재생된다.
꼭 앨리맥빌에 나오듯이.

오늘은 아픈 사라를 위해서, 보리차를 끓여 주었다. 그런데, 머리속에 대장금의 주제가 "오나라 오나라 ~~~~~~"가 계속 재생되는 것이였다. 나는 보약이 아닌, 단순한 보리차를 끓이고 있었는데,

오후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Golders Green에 갔었다. 한국 슈퍼가 있어서, 쌀을 사러 갔는데, 머리속에 계속 재생되는 음악이 있었다.  내가 아는 2개밖에 모르는 히브리어 (유대인 언어) 찬송가였는데, 그것에 계속 재생.

내가 요즘 너무 피곤한것 같다..

Friday, 10 December 2010

나중에 뽑으시는 엉겅퀴

본문 : 마태복음 13장 24절 - 30절






삶을 살다보면 항상 우리 주변에 엉겅퀴가 있는듯 하다.

In our lives, we have difficulties and challeges all the time. This is not strange as God pointed this out in this parable,

성경에서는 이 엉겅퀴에 대한 말씀이 많다.

이 엉겅퀴는 가시나무와 잡초, 쭉정이등에 비교가 되어서, 성경에 자주 나온다.

 This Thistle or thorn-bush appears in the Bible many times to signify the state of abandonment, barren and desolute state. This may be as a result of God's curse, or our inaction, lazyness. Etc



Proverb says in the field of the sleepyhead, thistles grow,,,, and also when Cain was casted away, God said the earth will produce

다윗은 잠언 말씀에 게으른 자의 밭에 가시나무들이 자란다 하였고, 가인을 저주하실때에도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번역비교] [유사말씀]



In this scripture,



Jesus (Son of man) is the farmer who sows the pure seed

Field is the world

The pure seeds are subjects of the kingdom

The thistles are subjects of devil

Enemy is devil.

Harverst is the end of the age

The harvesters are angels.



There are a few things we can learn from this



(1) We can ask this common question :

Why does he leave it with his wheat and good seeds? 왜 두시는지요?



원수의 임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 하나님의 역사가 강하게 임하시는 곳에 원수의 역사도 강하다. 하나님의 씨 뿌리는 것을 직접 막을수는 원수는 할수 없지만, 그 옆에 씨를 뿌려 버린다.



Alongside Gods chosen ones Satan plants his seeds.

They are not easily recognizable at first. (알곡과 쭉정이 – wheat and chaffs)

Seeds planted by Satan not often known that he or she is planted. But God let's them be until harvest time. Why doesn't God take them down earlier. Why does he tolerate the bad one to take away good mineral nutrition that you may feel that his children deserves on a exclusive basis.

함께 둚으로써, 좋은 열매는 미네랄도 뺐기고, 햇볓도 뺏기고, 여러가지 자신만이 누려야 할 것들을 잃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이로 인해, 우리는 힘들어 할수도 있다. 가시와 엉겅퀴로 인하여 아플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를 두신 이유는?

Sandpaper example



It makes you smoother, ready to be used, but the sandpaper itself gets worn out and thrown away.



이러한 환난이 우리에게 이로운 것이다.

로마서 5장



1. Therefore, since we have been justified through faith, we have peace with God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2. through whom we have gained access by faith into this grace in which we now stand. And we rejoice in the hope of the glory of God.

3. Not only so, but we also rejoice in our sufferings, because we know that suffering produces perseverance;

4. perseverance, character; and character, hope.

5. And hope does not disappoint us, because God has poured out his love into our hearts by the Holy Spirit, whom he has given us.

   

6. You see, at just the right time, when we were still powerless, Christ died for the ungodly.



1.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2.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3.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메세지 버전.

“There is more to come: We continue to shout our praise even when we re hemmed in with troubles, because we know how troubles can develop passionate patience in us, and how that patience in turn forges the tempered steel of virture, keeping us alert for whatever God will do next. In alert expectancy such as this, we are never left feeling shortchanged. Quite the contrary- we cant round up enough containers to hold everything God generously pours into our lives throught the Holy Spirit.



At work there are people who really challenge us. Who demands huge and they gain recognition at our expense. At work place, there are people, there are things, there are many problems.



오히려 우리는 모든것이 잘 진행이 될때 우리를 점검해봐야 한다.

왜냐면, 엉겅퀴의 입장에서 모든것이 수월히 된다는 것은 좋은 열매를 못 열게 하고, 다른 이의 성장을 막는 행위는 하는 것이기때문이다. 아품을 주는 것이고.



Also peace on earth give false sense of security that that includes for Gods people.



(2) We are not alone.

마이클잭슨의 노래같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이다. 가시나, 엉겅퀴의 사용처를 보았다. 예수그리스도의 가시 면류관이 그 엉겅퀴였다. 예수님 삶 자체가 엉겅퀴와의 싸움이었다.

This is so true, I tried to find the use of the thorns in the Bible, one most notable case was Jesus who had a crown made of thorns. Jesus' life was full of fight against thorns not alone at the time of his death.



There were false teachers, Judas



거짓 선지자들, 가룟유다,,,



가룟유다가 이 비유에 가장 맞는 것이다, 지도 처음에는 좋은 열매인줄을 알았을것이다. 사단이 숨겨둔 비밀 무기인지는 나중에 느꼈을 것이다.

Speaking of Judas, he himself may have thought he was one of the blessed ones, never have imagined that he is the secret weapon.

예수 그리스도 께서 가시 면류관을 우리를 위해 쓰셨다. 우리는 쉽게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모르신다 하지만, 그분이 우리의 아픔을 아시고, 우리의 고통을 이미 당해보신 분이시다.



땅의 저주의 의미로, 가시 나무는 사용되었지만, 그 저주의 열매를 쓰심으로, 이기심으로, 모든 죄의 저주를 무찌르셨다는 의미이다.

Thorns or thistle signify the curse. By wearing the crown of thorns and by resurrecting from the death, he conquered the power of death and this curse which was on humanity since the fall of man.





우리가 아프냐? 하나님을 의지 해야 한다. 우리를 위로해주시고,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실.



(3) 우리가 엉겅퀴를 빼지 않는다.



여기에서 보면, 좋은 열매가 옆의 엉겅퀴들을 빼지 않는다. 엉겅퀴의 역활은 단순히 우리의 성장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 처럼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중에 중요한 부분이 복수에 대한 부분이다.

Good seeds are not to confront the thistles. The purpose of Satan, by planting the thistles is not to hurt us but to cause us to sin, as sinning affects our growth, and reaching the fullness of His kingdom in us. One aspect is revenge.





원수 값는 것이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께 맡기라, 너는 원수를 갚지 말라. 라고 (로마서 12장 19절에 말씀 하신다.)



오히여, 말씀으로는 로마서 12장에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라 하신다 “Bless your enemiesl no cursing under your breath.... don't hit back... your generosity will surprise him with goodness. Don't let evil get the best of you; get the best of evil by doing good.”

엉겅퀴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천사가 나중에 버리게 된다.



It is not like we are taken out first to say 'so long suckers' that is human way. Desire for vindication 이 또한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He wants praise of his children by doing good to evil actions upon us.











결론



이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유이다.

This



그러면서, 우리에게 엉겅퀴들이 너희들과 함께 있을것이지만, 너희는 의를 행하고, 거룩하게 무르익은 삶들로 성숙하게 자라서 하나님의 나라를 아름답게 꾸미라 하ㅈ신다.



“Ripe, holy lives will mature and adorn the kingdom of Father in you”

(1) 우리는 엉겅퀴와 같은 삶을 살지 않아야 한다. 모든것이 평안할때, 우리가 오히려 엉겅퀴가 아닌지 점검을 해보자.

(2) 삶이 힘들때, 견디고 이미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경험이 있으신 예수님을 의뢰하자. 그가 우리에게 견딜힘을 주실것이다.

(3) 원수 값는 것은 하나님께 있다.

The negativity of 'tolerance'

We talk of a tolerant society.  Tolerance is one of the critical values of modern society that almost all multicultural states uphol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