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최고라는 로펌 두
업체가 붙는 싸움에 내 이름이 오르락 내리락 할때 그 기분은, 희한했다. 김앤장의
3명이 나를 방어한다는 소식에 한숨은 놓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다시 편히 잘수 있는 상황도 아니였다. 김앤장에서도, 내가 기소가 될수 있는 가능성과, 또한 진행이 될 경우, 벌금형/실형 및 사건이 마무리 될때까지 증거인으로 출국 금지 조치등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왔었다.
이러한 내용 자체가 나의 심장을 떨리게 하였다.
계속 드는 생각은,
내가 왜 이 회사 일을 했을까? 비록, 이
회사 일을 지난 2년간 넘게 보면서, 1억에 가까운 자문료를 받기는
하였지만, 지금 나의 심정은 돈이 문제가
아니였나.. 나에게 옥쇠가 쓰여져있고, 내가 어떻게 발버둥을 쳐도,
풀리지가 않는 다는 것이었다.
평소 가족들에게 기도 요청을
많이 하지 않았다. 내 마음에 교만도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을 어떻게 다 부모님께 이모에게 나눌수 있고 설명할수 있을까? 설명하기 귀찮고, 이해나
하실수 있으실까? 라는 생각과, 이제는 부모님의 품에서 벗어나,
나의 영역을 만들고, 나의 일과, 나의 사역을
만들고자 하는 독립 의식이 나에게는 강하게 있기때문에, 부모님은 내가 바쁜것으로만 알고 계셨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셨다.
겸손하게 컴퓨터에 앉아서,
내가 했던 일들과, 현재 상황, 또한 앞으로의
법률적으로 일어날 일들, 나에게 닥칠 가장 최악의 상황,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도를 요청드렸다. 신앙이 있던 없던, 기도의 힘을 믿던 그렇지 않던,
나의 이 편지는 내 자신에게 큰 도전이었고, 그 자체가 치료 효과가 있었던것 같다.
무엇보다,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내가 나자빠져도, 나를
잡아줄, 나를 안아줄, 받아줄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나에겐 큰 위로가 되었다. 또한 일에 대한 나의 소유의식을 내려놓게 되었다. 나의 일, 내가 짊어져
가야 하는 나의 고유 영역에 가족과 친구를 들여 놓으면서, 그 자체만으로도, 나의 세상이 넓어지고, 감당할 힘이 배가가 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2월 말 4일 일정으로 서울로 출발을 하였다. 서울에 도착하여 클라이언트가 예약을 한 노보텔에 자리를 잡고,
바로 김앤장 사무실로, 3명의 변호사들을 만나러 갔다. 김앤장의 파트너중 한명이자, 서울지검 부장 검사 출신의 무서운 눈매의 변호사, 미구 및 한국 변호사이자, 외국 기업과 한국 기업간의 비슷한 사건을 많이 진행을 한 여자 변호사님과, 이제 사법고시후,
검사생활을 잠시 마치고, 들어온 나의 나의 또래의 주니어급 변호사와 미팅을 시작하게
되었다.
경찰이 나에게 물어올 예상 질문들,
내가 하지 말아야 할 말들, 또한 나와 함께 다닐 변호사가 해야 할 말등 여러가지
대화를 나누면서,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가장 크게 걱정한 것은 상대가 태평양이라는 것, 그들이 어느 증거를 가지고
있는지 , 또한 경찰과, 담당 검사등이 한국 기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자세로 이 사건을 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무엇보다, 영국 기업의 임원들이 바쁘기 때문에, 또한
귀찮고, 무섭기 때문에, 한국에 오려고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건이 마무리 될때까지 한국 계인 나를 출금금지로 붙잡고 있으려는 계획이라는 것이다. 이미 내가 내일 경찰에 출두할것을 알고, 출국 금지 조치를 신청했다는 소식도 듣게 되었다.
내일 경찰서 출두시, 바로 출국 금지를 신청할수 있기때문에 영국 여권을
가지고 안가고, 영국 운전 면허증을
가지고 가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얘기를 하면서,
변호인단이 나에게 해준말은 괜히 두 회사 감정싸움에, 손사장이 중간에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끼어서 이렇게 당하네요. 라는 말을 들었다. 미팅을 마치고,
다음날 오전 10시에 출두를 약속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날은 왜이리 춥고, 혼자 왜 이리 마음이 힘든지 무거운 걸음으로 숙소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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