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11 January 2013

어깨는 나중에 어디어 쓰려고?

신명기 10장 8절 “ 그때에 여호와께서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게 하며 여호와 앞에서서 그를 섬기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셨으니, 그 일은 오늘까지 이르느니라”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가운데, 레위 지파가 어깨로 매고 옮겨야 하는 명령을 져버리고, 편하게 소가 끄는 수레로 언약궤를 옮기다가, (역대상 13장 9절) 소가 뛰고 언약궤를 옮기는 바람에 잠시나마 영광스러웠던 행차가 멈추게 된다.

다윗은 3개월 뒤에야 깨닫고, 레위지파 제사장들로 어께에 매고 다시 행차를 시작하게 된다.

편하게 수레가 끌수 있는데, 왜 무식하게 어께에 매나요? 라고 질문 하고 싶은가?
그런 질문을 하는 뒷편에는 편하게 신앙 생활하고자 하는 마음,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거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는 않은지?

어쩔땐 하나님께서 무식해 보이지만, 우리 어깨에 영적인 짐을 메고 가게 하실때가 있다.

무식해 보여도, 의미 없어 보여도, 우리의 노동과 희생을 통하여 그분의 언약의 약속이 주변에 더욱 퍼질수 있다면, 그분의 빛이 간절히 필요한 곳에 우리를 통해 전달되어질수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이 짐를 메고 가야 한다.

이천년 전에 그분또한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그분 연약한 어깨에 무거운 나무 십자가를 직접 지셨기 때문에.... (결코, 수레에 맡기지 않으셨고, 다른 자들에게 맡기지 않으셨고, 쉬운길을 찾지 않으셨고,,) 지금 오늘 우리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기꺼이 이 짐을 메고 가야 한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

The negativity of 'tolerance'

We talk of a tolerant society.  Tolerance is one of the critical values of modern society that almost all multicultural states uphol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