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3 February 2013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라



Yesterday, I met a guy called Guy who spent most of his life bringing up his children and passionately getting involved in sociopolitical issues of UK, being a light and salt of the world.

HE brought up his children beautifully and also is doing so much works influencing and raising voices some of the issues that is against christian teaching.



·         그런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됩나. 과연 나도 70-80 되었을때에, 어떤 모습으로 사는 것이 바르게 살았다 라고 생각하고, 또한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수 있을까 라는 생가 해본다.

·         우리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환경, 정치, 경제, 많은 것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위해서, 전쟁을 하고, 그것을 두고, 다투고하지만, 사실, 안을 들여다 보면, 모든것이 사람을 위한 것이라 볼수 있다. 휴마니티 라는 과목안에 들어가는 모든것이지 않는가?

·         바쁜 , 성공을 위한 삶을 따라서, 나아가긴 하지만, 사실, 궁극 적으로 모든것은 내가 잘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위해 사는 것이 아닌가 해본다.

·         전쟁이 심해지고, 다툼이 심해질때는 이부분을 놓치지 쉽다. 보수로 진보로 나누어 지고, 영국에서는 유럽에서 나오내 마내, 기차를 만드네 마네,, 모든것이 사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아닌가? 이러한 인간 사랑의 근본이 결코 하나님의 마음과 상이하지 않다는 것을 비유에서 볼수가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 인간 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치시면서, 비유를 드셨다.

강도를 만난 사람을 보고,
제사장 - 그를 보았고, 피하였다.
레위인도 그를 보고 피하였다.
사마리아 인은 그를 보고,. 기름과 포도주로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끝까지 책임을 졌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이다.
상처 입고, 넘어진 우리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싸매주시고, 물과 피를 흘리시고, 값을 치루시고, 끝까지 책임을 져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보고 이렇게 하라고 하신다.

작년에 관련해서 나눈 것이 기억이 난다. 제사장과 레위인을 두신 이유는 무엇일까?

·         그곳에 있는 자들에게 율법에 매이지 말고, 종교성의 탈을 쓰지 말라는 이유일것이다.
·         제사장과 레위인은 피를 만지면 안되는 사람들이다. 성전 의식을 위해서, 직업적으로 안되는 것이다. 율법에 의한다면 피한것이 한것이다.

* 영적인 의미로 보자: 1- 모세의 율법 위에,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이 있다.

 우리의 직업에 최선을 다하는 맞다. 하지만, 우리의 직업과, 비전을 이루는 길에 사람에게 우리의 사랑과 마음을 주어야 할때가 다가올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것인가?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 먼저인가? 직업정신에 투철하게 가는 것이 먼저인가?
예수님은 이것에 관련하여 우리에게 도전하신다.

하나님께서 마지막때에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실까? 이러한 종말론적인 마음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 수고했다, 너는 매출액이 몇억불이 되는 회사에, 부장 자리까지 올라갔구나?
수고했다, 너는 열심히 일해서, 너의 자녀에게 두채를 물려주어서, 그들이 편하게 생활을 할수 있도록 하였구나? 라고 하실까?
, 너는 학위를 몇개 땄구나, 그리고 520명이 너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20여명만 너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구나, 그정도면 사회에서 적당한 평가를 거두었다  라고 하실까?

너는 많은 자들을 돌보았고, 많은 자들을 싸매주었고, 많은 자들을 너의 영적 자녀로 삼았구나, 라는 칭찬을 하실까?

자신도 준비 되지 않았을때는 한사람도 감당하기 힘이 들지만, 하지만, 우리를 도구로 온전히 내어드린다면,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실것이다.

·         교회라는 공동체가 감사한것은, 이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이 함께 자랄수 있지만 또한, 이를 통해서, 함께 선한일을 할수 있는 것이다. 마가복음 2장에, 중풍병자를 도운, 4명의 친구들을 기억하자.

-          중요한것은 제사장과 레위인의 도움이 없더라도, 필요한자는 도움을 받았다.
-          내가 아니여도, 하나님께서 쓰실자를 찾으실것이다.

-          돕는 위치에 가는 것은 우선 자신을 위해서도, 중요한 것이라고 볼수 있다.

-          같은 이슈라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은 하실것이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하느냐 하지않느냐의 상황에 있는 것이다.

-          예은이 하나님께서치료 하실것이다. 이를 두고, 우리가 기도로 마음에 짐을 지고, 함께 중보를 하여, 하나님께서 일하실때 우리에게 간증이 되느냐, 아님, 불난 구경꾼이 될것인가?

-          영광이의 미래 하나님께서 인도 하실것이다. 불난집에 구경꾼이 될것인가? 기도와 헌신으로 함께 짐을 지고 갈것 인가?

·         마태복음 16 24-28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이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목숨과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사람이 행한대로 갚으리라.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는 ...

자기를 부인하고, 사람을 우리 마음에 두고, 이웃사랑을 위하여, 우리의 계획과, 여러가지를 내려놓을수 있어야 한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내가 갖은 순서와, 내가 하는 , 내가 사랑하는 것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릴수 있어야 한다는 ….

Wednesday, 30 January 2013

While journeying on faith, we are almost on anesthesia from the pain of reality.

All the faithful servants have been a dreamer - in other words, those who knew of the challenges of reality but persevered and faithfully journeyed on.

You could say they are all under mass fideistic anesthesia. The world mocked them.

Is it a useful wake up call or is it a temptation of Satan dragging you to a lower world?

I am not sure.

My wife is often the one who is a realist, who does not see beyond what she sees with her own eyes. She is almost like Lot who only saw a fertile land before his eyes while Abraham saw farther.

With her own words, she said God is using our little family to support others at this time. Where did that go?

Is she waking me up? or is she shatters my faith?
Is she being like those 10 spies sent to the promised land or a talking donkey before the evil path of Ballam?

What has faith got to do with this-she may say? She is under a dangerous platonic dualism that defines the sphere of God and sphere of man; although seem to protect God's holiness, but no, it is a restricting God's reign on 'trivial' part of our lives.

All these that we go through is also under God's supervision, and radar.

In fact, before God all our work, lives are trivial...

She wakes me up, I am woken up, but I choose to go under the anesthesia of faith because, that is the only way.

I think of David, last few days God really spoke to me clearly that I should not give up but be a blessing to him. Yes overdrafts, and debts worry me but they are just numbers. Credit is also my asset that God has given me.

It buys time, it buys education, it buys chance to shine much earlier. It is not a matter of choice, but matter of faithful journey.

God does not want us to settle with the second best. What is the best for David - that is going forward without a delay.

Second best is to re-enrol. Would God want a second best choice for him? I felt strongly that it was no.

Have I paid for David's cello and fee? no God did through me. In whom who gives me strength and means.

If she can't be on my side, but stays as a opposition, then let her be. If our faith cannot go through this, my faith will.







Friday, 11 January 2013

어깨는 나중에 어디어 쓰려고?

신명기 10장 8절 “ 그때에 여호와께서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게 하며 여호와 앞에서서 그를 섬기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셨으니, 그 일은 오늘까지 이르느니라”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가운데, 레위 지파가 어깨로 매고 옮겨야 하는 명령을 져버리고, 편하게 소가 끄는 수레로 언약궤를 옮기다가, (역대상 13장 9절) 소가 뛰고 언약궤를 옮기는 바람에 잠시나마 영광스러웠던 행차가 멈추게 된다.

다윗은 3개월 뒤에야 깨닫고, 레위지파 제사장들로 어께에 매고 다시 행차를 시작하게 된다.

편하게 수레가 끌수 있는데, 왜 무식하게 어께에 매나요? 라고 질문 하고 싶은가?
그런 질문을 하는 뒷편에는 편하게 신앙 생활하고자 하는 마음,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거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는 않은지?

어쩔땐 하나님께서 무식해 보이지만, 우리 어깨에 영적인 짐을 메고 가게 하실때가 있다.

무식해 보여도, 의미 없어 보여도, 우리의 노동과 희생을 통하여 그분의 언약의 약속이 주변에 더욱 퍼질수 있다면, 그분의 빛이 간절히 필요한 곳에 우리를 통해 전달되어질수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이 짐를 메고 가야 한다.

이천년 전에 그분또한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그분 연약한 어깨에 무거운 나무 십자가를 직접 지셨기 때문에.... (결코, 수레에 맡기지 않으셨고, 다른 자들에게 맡기지 않으셨고, 쉬운길을 찾지 않으셨고,,) 지금 오늘 우리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기꺼이 이 짐을 메고 가야 한다.

The negativity of 'tolerance'

We talk of a tolerant society.  Tolerance is one of the critical values of modern society that almost all multicultural states uphol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