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장 4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것임이요”
Blessed are those who mourn for they will be comforted.
서론
사람들은 코미디를 좋아합니다. Stand-up comedy, slapstick, sitcom, 우리로 하여금 웃음을 유발하는 몸짓들, 말장난으로 우리를 즐겁게 기분좋게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위적인 웃음은 잠시는 우리에게 엔돌핀을 줄지라도, 우리의 영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예례미다 7장 34절 – 그때에 내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 기뻐하는 소리, 즐기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끊쳐지게 하리니 땅이 활폐하리라”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는 항상 기뻐해야 하는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쁨은 세상의 싸구려 기쁨 감정이 아닙니다. 회개하고 용서 받음 심령가운데 다가오는 하나님께로 부터 온 기쁨입니다.
주님을 깊게 만나기전, 엄마 몰래 만화책을 빌려서, 책상 서랍에 넣었습니다. 생전 처음 빌려본 만화책 (슬램덩크 였었는듯). 내가 중학생이 되어서, 만화책을 빌렸다는 사실과, 그 만화책이 내 눈앞에 보이는 책상 서랍에 있다는 사실에 하늘로 날아갈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금방 들켰습니다. 수련회를 다녀오는 기간에 만화방에서 연체 독촉 전화가 왔었고, 다행히 많이 혼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의 싸구려 웃음이 기쁨이 우리로 하여금, 슬퍼하고 애통해야 할때, 진정한 애통을 이루지 못하게 하고, 진정한 위로에 이르지 못하게 하고는 있지 않은지요?
이사야 61장 1절3절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 가 키이다.
우리는 시내산에서 근심하며 슬퍼할것인가? 시온산에서 근심하며 슬퍼할것인가?
희락의 기름과, 찬송의 옷, 화관의 – 즉 진정한 순수한 기쁨을 우리가 어디서 얻을수 있는 가요? 상한마음을 하나님앞에 가지고 오고, 시온에서 애통함을, 우리의 분통함을 내려놀때입니다. 시내산이 아닌 시온산.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온전히 털어 놓을때에, 진정한 기쁨이 우리 심령안에 내려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슬퍼해야 하는가?
(1) 우리 가운데 있는 죄성향때문에 슬퍼해야 한다.
고린도 후서 6장 9절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
그들의 죄로 인하여, 선한 훈계를 받음으로 상한 마음으로 근심하며 애통할때에, 그들은 하회개를 이르렀다.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간절하게 하였고 (what earnestness) 되돌아 가고자 하는
그들로 변증하게 하였고 (eagerness to clear yourselves) – 잘못에 대한 핑계가 아닌, 회복에 대한 reasoning
분하게 하였으며 (what indignation) – 상황이 아닌, 자신의 모습에
두렵게 하였으며 (what alarm) - 두려움
사모하게 하였으며 (what longing) -
열심있게 하였으며 (what concern)
벌하게 하였는가? (what readiness to see justice done)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 지는 것을 보고자 하는 모습.
회개치 아니한,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지 않은 자들을 보면, 다들 결국이 엉망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봅시다. 이 과정이 없었습니다
가인을 봅시다. 분하였지만,,,,, 이것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분함이 아니였습니다. 자신이 제사가 받아들여지지 아니하며, 아벨의 죽음에 대한 회개가 아닌 분한 감정이 아직도 남아있었습니다.
사울, 가룟유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고 회개를 이룬 예가 있습니다.
다윗왕입니다.
시편 51편
(시 51:1)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시 51:2)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시 51:3)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시 51:4)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시 51:5)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 51:6)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시 51:7)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시 51:8)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시 51:9)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시 51:10)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2)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 51:11)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 51:12)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 51:13)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시 51:14)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시 51:15)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시 51:16)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시 51:17)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 51:18)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시 51:19)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
이러한 애통함과, 통회자복함이 있는것이 시온에서 슬퍼하며 애통하는 자의 모습이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화관과, 기쁨으로 부어주신다.
시편 37편 4절에 “여호와를 기뻐하라 “Delight yourself in the Lord”
(2) 세상가운데 편만한 죄와, 불신 때문에 슬퍼해야 한다
Will and Grace를 보고 웃고 있는 것을 본다. 어떻게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공의와 창세 법칙을 진정으로 믿고 있다면, 그것을 보고 웃을수 있느냐고 의문하는 기독교 리더들이 있다.
악이 퍼지고, 미디어를 통해서, 실제 악 보다, 몇배로 부풀려 yeast (효모)가 발효하는 것 이상으로 빨리 퍼지고 있는 이 악의 모습과, 악인들의 회개 없음과, 이들을 향해 나단 선지자와 같이 선포하는 자가 적음에 우리는 슬퍼해야 한다.
세상을 향하여 애통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이사야 61장 말씀처럼, 우리에게 성령을 부으사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게 하시며, 보내시고, 마음이 상한자를 고치며,
고린도 후서 3장 3절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것이며,...
예례미아는 바벨론에 함락되기 전 마지막 시드기야왕 시대에 유대 백성의 회개를 회친 선지자였습니다. 아무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는 눈물의 선지자라는 이름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예레미아 애가를 보면, 타닥해버리고, 귀가 막혀버린 예루살렘을 향한 그의 애통함이 나타나있습니다.
매 장이 슬프다 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선민으로 옛 영광을 잃어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져버린 백성과 나라를 위한 그의 눈물과 애통함.....
애가 3장 48절 “처녀 내 백성의 파명을 인하여 내눈에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49절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50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시기를 기다리는 도다
51절 나의 성읍의모든 여자를 인하여 내 눈이 내 심령을 상하게 하는도다
56절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어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우지 마옵소서
너무 쉽게 세상과 함께 흘러가서 죄가 죄인지, 이것이 나쁜지 깨닫지도 못하고, 둔해진 우리가 아니라, 나의 이웃, 나의 형제 자매, 나의 교회, 나의 친구, 나의 동네, 나의 나라를 위해서 울고 회개하며 중보할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리즈 하월즈의 중보를 생각해봅니다. 그는 뉴스나 신문을 보면서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를 위해서 기도하였고, 중보하였고, 하나님의 역사함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결론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봅시다.
약 4: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약 4: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약 4: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성을 놓고, 애통해야 합니다. 또한 세상을 놓고 애통해야 합니다. 이러할때에 진정한 기쁨과, 위로가 있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는 단순한 웃음 – 황수관 박사의 그런 얇은 방식이 아닌, 깊은 회개가 합쳐진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선물인것입니다.
우리는 애통할때 애통해야 합니다...
Saturday, 22 October 2011
Monday, 29 August 2011
기독교 극우 정당 설립을 반대한다.
신정주의 (Theocracy) 를 이땅에 적용을 하겠다는 것이다. 신정주의란 나라의 정치가, 신과 그 신을 섬기는 자들에 의해 이루어 지는 나라 정치의 모습중에 하나이다.
기독교 중심의 신정주의가 한국에 이루어질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 의해 이 기사들이 무시를 당하고 있으며, 그냥 웃어 넘기는 농담과 같이 여겨지는 것이다.
또 다른 점은 세속적인(secular) 세상 신정주의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신정주의 국가는 꾸준하였다. 현재 또한 중동의 종교자유가 없는 이슬람 국가들 (이란, 사우디,,등), 바티칸 시티 , 이스라엘등이 있으며, 또한 부분적인 형태로, 국가 종교 제도 (state religion) 을 가지고 교회의 우두머리겪이 정치적인 힘들 행사하는 국가 또한 있다.
과연 과거의 신정주의 국가들이 인간의 보편적 권리와, 또한 자신들의 종교의 순수함을 이어갈수 있었는가?
중세시대의 카톨릭의 성직자 및 총체적인 시스템적인 타락, 십자군 스캔들, 이슬람 국가의 기독교 탄압, 조선시대의 폐불정책 등에서 나타나듯이, 뒤돌아 보면, 오히려, 문화, 사회,인권 및 모든 부분에 비 신자들에게는 고통, 또한 그들이 믿는 종교내에서는 타락과, 불법이 넘쳐났다.
바리새인 및 대제세장들의 파워가 막강하였던, 2000년전 이스라엘은 예수를 오히려 못박아버렸다.
우리 한국을 보자.
남북 대치상황, 진보와 보수가 대립하며, 내부의 분쟁과 갈등이 넘치는 곳에 양쪽의 모두 받아드릴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러한 역할을 기독교등의 종교계에서 해야 하지만, 오히려, 기독교 극우 정당을 새우는 것은 비 신도들과 또한 신도들에게 다 해가 되는 것이다.
이 교계의 지도자들이 정당을 새워서, 비례대표제도로, 국회의원 한명을 내는 것에 목숨을 거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들 자신과, 그들을 따르는 신도들의 심령가운데, 진정으로 그들이 설교하고 믿는 하나님의 나라 (kingdom of God) 이 먼저 이루어 져야지 반대의견을 갖은 자들에 소리를 들어주고, 보듬어 주고, 긍정적으로 이 나라가 나아갈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 극우 정당은 시대의 흐름, 경제적 흐름, 현 시대에 진정으로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정치 모델과는 떨어진 위험한 모델이며, 바로 취소 되야 할 것이다.
Friday, 12 August 2011
리더란?
자의 반, 타의반으로 앞에 새워지고, 리더라는 자리에 앉게 되었다.
팔로워들을 위해서, 그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더 많이 알고, 배워야 한다는 부담에 사로잡혀있을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더 많이 아는 자가 아닌, 더 깊이 깨닫는 자라 되라"
'많은 구절을 아는 자가 아닌, 한 구절이라도, 깊게 깨닫고, 그 말씀을 붙잡고, 내면에 전쟁을 일으키고, 내 자신을 갂아내며, 다듬으며, 변화되는 깊은 리더가 되라' 하신다.
만물박사가 아닌, 먼저 전인격적인, 내면에 변화를 이룬 리더가 되야겠다.
리더로써 좋은모습을 보이는데에 포기하고, 말씀을 붙잡고 내면의 전쟁을 하여 승리한 상처자국을 당당히 보이며, 위로하며, 용기를 북돋아 줄수 있는 그런 리더가 되야겠다.
팔로워들을 위해서, 그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더 많이 알고, 배워야 한다는 부담에 사로잡혀있을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더 많이 아는 자가 아닌, 더 깊이 깨닫는 자라 되라"
'많은 구절을 아는 자가 아닌, 한 구절이라도, 깊게 깨닫고, 그 말씀을 붙잡고, 내면에 전쟁을 일으키고, 내 자신을 갂아내며, 다듬으며, 변화되는 깊은 리더가 되라' 하신다.
만물박사가 아닌, 먼저 전인격적인, 내면에 변화를 이룬 리더가 되야겠다.
리더로써 좋은모습을 보이는데에 포기하고, 말씀을 붙잡고 내면의 전쟁을 하여 승리한 상처자국을 당당히 보이며, 위로하며, 용기를 북돋아 줄수 있는 그런 리더가 되야겠다.
Wednesday, 9 March 2011
진정한 카라
(살전 5:16) 항상 기뻐하라
카라 라는 걸 그룹이 있다. 그 이름의 의미는 유쾌함, Joy라는 의미가 있다.
세상의 기쁨, 이들이 노래하는 것은 세상의 행복, 세상의 쾌락이다.
성경에도 카라 가있으며, 이는 단순히 세상에서 말하는 그러한 쾌락의 의미가 아닌, 더욱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 왜 기뻐해야 ㅎㅏ는가?
(1)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본문에, 하나님께서 명령을 하신다. 항상 기뻐하라. 여기에는 능동적인것과 타동적인 것이 함께 내재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기쁨은 단순한 즐거운 기분이 아니라. 행복감과는 다른 것이다. 행복감의 경우, 슬픈 일이 다가올 때,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쁨은 슬픔과 함께 갈수 있는 (compatible)한 감정이자, 우리의 행위인 것이다.
하박국 3장 – 슬픈 일들과 기쁨이 함께 갈수 있는 예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Joy는 감정이 아니라 (not Emotion) 이것은 행위이다.
우리가 순종을 해야 하는 행위
(2) 성령의 열매이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할찌니,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 희락이 포함되어 있다. 열매를 거두어야 하는,,,,
하나님과 우리가 동행하는 것이 나타내야 하는데, 그중 한 열매는 희락인 것이다.
(3) 우리는 누구를 인하여 기뻐해야 하는가?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해야 한다. 사람의 일들이나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도 우리는 만족하면 안된다. 우리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 해야 한다.
너무나도 자주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일들 (에 바뻐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기도 응답에 (잠시 감사하고, 잊어 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에 휩싸이고 (감격을 놓쳐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에 매여버린다.
우리의 기쁨의 근원은 여호와여야 하는 것이다.
(4) 왜 기뻐해야 하는가?
우리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할수 있다. 그는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기쁨 없는 세상에, 진정한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기쁨이 진국이다.
세상의 명예와, 행복과, 아무것도 바꿀수 없는
히브리서 12장 2절 :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1.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the author and perfecter of our faith, who for the joy set before him endured the cross, scorning its shame, and sat down at the right hand of the throne of God.
우리 주님의 예를 들어보자.
십자가- 최악의 상황을 참으셨다. 기쁨은 위하여. 우리에게 주실수 있는 그 기쁨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며, 받을 그 열매의 기쁨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셨다.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바라보다” 라고 얘기를 하고 있다.
“너희가 힘이 들 때 3절 – 그는 참으셨다… 그리고 5절 – 주의 징계를 받고, 훈련을 받을 때 낙심하지 말라 – 라고 위로 하신다.
11절 – 무릇 이러한 것이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으나, 연단을 통하여,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는다.
결론 :
우리에게는 기뻐할 이유가 있다.
1. 명령이다
2. 의무이다.
3. 권리이다.
Be Joyful. Means Be Jesus-ful.
세상의 짧은 감정에 속을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기쁜 것을 생각하며, 기뻐하는 우리가 되야 한다.
어떻게?
(1) 예수를 바라보라
(2) 성령을 따라 살아, 성령의 열매 희락을 맺자.
카라 라는 걸 그룹이 있다. 그 이름의 의미는 유쾌함, Joy라는 의미가 있다.
세상의 기쁨, 이들이 노래하는 것은 세상의 행복, 세상의 쾌락이다.
성경에도 카라 가있으며, 이는 단순히 세상에서 말하는 그러한 쾌락의 의미가 아닌, 더욱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 왜 기뻐해야 ㅎㅏ는가?
(1)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본문에, 하나님께서 명령을 하신다. 항상 기뻐하라. 여기에는 능동적인것과 타동적인 것이 함께 내재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기쁨은 단순한 즐거운 기분이 아니라. 행복감과는 다른 것이다. 행복감의 경우, 슬픈 일이 다가올 때,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쁨은 슬픔과 함께 갈수 있는 (compatible)한 감정이자, 우리의 행위인 것이다.
하박국 3장 – 슬픈 일들과 기쁨이 함께 갈수 있는 예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Joy는 감정이 아니라 (not Emotion) 이것은 행위이다.
우리가 순종을 해야 하는 행위
(2) 성령의 열매이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할찌니,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 희락이 포함되어 있다. 열매를 거두어야 하는,,,,
하나님과 우리가 동행하는 것이 나타내야 하는데, 그중 한 열매는 희락인 것이다.
(3) 우리는 누구를 인하여 기뻐해야 하는가?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해야 한다. 사람의 일들이나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도 우리는 만족하면 안된다. 우리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 해야 한다.
너무나도 자주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일들 (에 바뻐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기도 응답에 (잠시 감사하고, 잊어 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에 휩싸이고 (감격을 놓쳐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에 매여버린다.
우리의 기쁨의 근원은 여호와여야 하는 것이다.
(4) 왜 기뻐해야 하는가?
우리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할수 있다. 그는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기쁨 없는 세상에, 진정한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기쁨이 진국이다.
세상의 명예와, 행복과, 아무것도 바꿀수 없는
히브리서 12장 2절 :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1.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the author and perfecter of our faith, who for the joy set before him endured the cross, scorning its shame, and sat down at the right hand of the throne of God.
우리 주님의 예를 들어보자.
십자가- 최악의 상황을 참으셨다. 기쁨은 위하여. 우리에게 주실수 있는 그 기쁨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며, 받을 그 열매의 기쁨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셨다.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바라보다” 라고 얘기를 하고 있다.
“너희가 힘이 들 때 3절 – 그는 참으셨다… 그리고 5절 – 주의 징계를 받고, 훈련을 받을 때 낙심하지 말라 – 라고 위로 하신다.
11절 – 무릇 이러한 것이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으나, 연단을 통하여,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는다.
결론 :
우리에게는 기뻐할 이유가 있다.
1. 명령이다
2. 의무이다.
3. 권리이다.
Be Joyful. Means Be Jesus-ful.
세상의 짧은 감정에 속을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기쁜 것을 생각하며, 기뻐하는 우리가 되야 한다.
어떻게?
(1) 예수를 바라보라
(2) 성령을 따라 살아, 성령의 열매 희락을 맺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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