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30 May 2010

Ordained praise, ordained life


마태복음 21장 15절 – 16절

(마 21:15)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마 21:16)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ㄹ)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시8:2


16절을 영어로 하면 out of babes and sucklings you have ordained praise.라는 말이 나온다.

서론 :

예수그리스도께서 예수살렘이 입성을 하실 때, 사람들은 이제야 오시는 구나, 또한 군중심리에 사로잡혀 그를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미를 하였다.

그가 성에 입성하여, 먼저 본 것은 돈을 바꾸는 사람들과, 이익을 내는 상인들이었다.
Passion of Christ에서는 이 상인들이 내는 수익중 일부를 성전이나 바리새인들에게 바치고 있는 것 처럼 그리고 있다. 상당히 가능한 것으로 보여진다.
예수그리스도는 그 장터를 뒤집어 엎으시고, 책망하신다. 그리고, 다가오는 장님들과 앉은뱅이를 고치신다. 그에게 아이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양을 하게 되며,
서기관과 제사장들은 이부분을 불쾌해 하며, 예수님께 저들의 소리를 듣고 있냐라고 따지자 하시는 말씀이 이말씀이였다.
“아이와 젖먹이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신다”

이 말씀은 원래 시편 8편 2절에서 나온말이였다. 우리에게 여호와 우리주여 주의 이름이 온땅에 어찌그리아름다운지요 로 유명한 8편 말씀에 나온 말씀이였다.

본론 :

1. 아이의 입 (교육의 중요성)
어린 아이들이 호산나의 의미를 알았겠는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았겠는가?
좀전에 자신의 부모들이 하는 것을 그데로 보았던 것이다.
그렇게 단지 모방을 하고 있던 그들의 찬양과 찬미였지만, 그것을 주님은 완성을 시키시고 받은것이다.
아이들이 모른다고, 아이들이 어리다고, 우리는 따로 두지 말고, 무시하면 안된다.
그들은 보고 배우며, 그것이 자신들의 고백이 되며, 그러한 고백을 하나님께서 완성 시키신다.
어린 아이들의 웅얼거리는 찬양 소리가, 단순히 웃고 넘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제사장들과 서기관은 호산나의 의미를 알았다, 그리고 질투했다)

2.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교만에 가득차있었다. 질투에 가득차있었다. 자기 기득권을 빼앗길 것 같았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장님이 눈을 뜨는 그런 상황 앞에서 그들의 모습은? 놀랍다. 어떻게 이렇게 무감각하고, 놀라지 않는 그들, 질투의 힘이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자기 교만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세상 이치에 어긋나는 그러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기적앞에 무감각한 그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진행하신 일에 얼마만큼 반응하고 있는가?

우리또한 자기 잘난 맛에 전혀 뭔일이 현재 있는지?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을 우리에게 진행하시는지 무감각하지는 않은가?

깨어야 한다. 하나님의 그 눈이 가는 곳에 그분의 손이 있는 곳에 우리가 있어야 한다.



3. Ordination – 완전케 하시는 주

어린아이들을 또한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자신으로 볼수 있다. 예수그리스도는 이 사건 이후 5일 뒤에 돌아가셨다. 무슨일인지도 모르며, 호산나의 의미도 모르며 찬양하며, 그분을 예배하는 우리의 모습. 부족하며, 약하며, 의미 없는 말일찌 몰라도, 그러한 자들은 주님은 중요하게 새우시고, 그들의 찬양을 받는 다는 말이다.

우리의 입으로 우리의 모습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의 찬양에, 우리의 예배에, 우리의 삶에 우리의 노력에 우리가 필요한 것은 자기 잘란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의 이 모든 것은 완전하게 하시며, 의미 있게 하시며, 안수하시며, ordain하시는 주님앞에 나가는 것이 먼저다.

그분이 완전하게 하신다.

우리가 완성할수 없는 Puzzle piece를 찾고자 해메지 말고, 그 last puzzle을 쥐고 계신 주님앞에 나가야 한다.

잃어버린 양의 비유에 나오는 그 양,,,, 자기 삶에 자기 계획으로, puzzle piece를 찾아 가다가 헤매로 길을 잃은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그런 잃어버린 양을 찾아 목자되신 예수그리스도는 찾고자 애쓰시고 있다...


결론 :

어린아이들은 의미도 몰랐지만, 예수님께 찬미를 올려드렸고, 그분은 받으셨다. 그러나 의미를 알면서도 자기 교만과 질투에 가득차서, 못마땅하게 보았던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그 장면을 저주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야 한다. 이아이들이 처음에는 모방을 하지만, 그러한 모방하는 신앙생활로부터, 이들의 믿음생활이 시작되며, 그들에게 주님은 은혜로 그들에게 믿음을 선물로 내리신다.

연약한 아이들과 같은 우리의 신앙, 부족하고 나약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완성케 하시고, 힘을 주시니 (perfect, strength) 의지 하고 나갈수 있다.

우리의 삶에 그분의 Ordination 이 필요하다.

우리의 찬양에, 우리의 기도에 그분의 ordination이 필요하다.

그리할때에, 그분이 기쁘게 받으시며, 거룩함에 한걸음 더 나갈수 있을것이다.

Sunday 23 May 2010

시편 18편과 가정

가정의 달이란다. 1년 365일이 가정의 달이라고 생각한나머지, 이번 5월에는 아무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다.

어제 가정예배시간에 나눈 시편 18편 말씀이 있었다.
I love you O Lord, my strength.
The Lord is my rock and my fortress and my deliverer, my God my rock in whom I take refuge, my shield and the horn of my salvation, my stronghold.

여호와께서 힘이요, 바위요, 피할곳이요, 방패요, 구원의 뿔이라는 말씀.
이러한 여호와의 보호와, 방패는 어떻게 느껴지는 걸까?

크리스챤에게는 가정을 통해서, 여호와께서 이러한 보호를 나타내신다는 말씀이였다.

그렇게 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맞는듯 하다.

내가 가장 힘들때 곁에 있어주었던것은 부모님의 사랑과, 인내, 기도 위로였으며, 이러한 것이 약한 나의 무릎을 일으키며, 다시 시작할수 있게 하였던 능력이였으며, 이러한 것은 하나님께로 부터 나온것이며, 가정을 사용하여서, 나타내는 하나님의 힘이였음을 인정한다.



나의 가정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한다.

The negativity of 'tolerance'

We talk of a tolerant society.  Tolerance is one of the critical values of modern society that almost all multicultural states uphol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