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21 June 2018

일본

헐. 너무 오랜만에 글을 올리는...

이번 한 학기 수업이 마치고, 일본으로 향하는 길이다.
할일도 많고, 바쁜 시기이지만, 또 나름데로, 쉼도 갖고, 좋은 동기부여를 받기 위해서, 조금 일찍 출국을 한다.

어떤 만남이 있고, 어떤 경험이 있을까?  이동 가운데,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공급받을수 있으면 좋겠다.


Monday, 5 March 2018

도시와 교회


많은 교회들이 도시를 위해서 기도하며, 도시를 변화 시키는 것을 모토로 두고 있다. 
본인이 속해 있는 교회 또한, 4가지의 설립 목적중에 한가지는 도시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서울이라는 도시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두신 이유가 있을것이라는 것에 주목을 하고 있다. 

하지만, 도시를 변화 시키는 것 “Transform the city”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에게 도시는 무엇인 것인가?

도시를 생각할 때 우리가 갖는 생각은 무엇인가? 
 편리함? 문화 생활? 정치 경제의 중심? 더러움? 

성경속에서 도시를 생각할 때 우리 머리속에 떠오르는 모델은 무엇인가? 카인이 도망자로서, 새운 첫 도시? 소돔과 고모라? 여리고? 예루살렘? 

우리는 도시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야 할 이유가 있다. 과연 우리가 변화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지 못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변화 되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우리가 무엇으로 변화를 시키려고 하는지 (transform to) 를 모른다면, 우리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가기 때문에. 

(Gen 4:17) And Cain knew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Enoch: and he builded a city, and called the name of the city, after the name of his son, Enoch.

에녹시는 성경에서 기록하고 있는 첫 번째 도시이다. 
저주를 받은 가인이. 두려움에 떨고 있던 그가 도시를 만들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인위적인 보호 장벽을 만든 것이다. 에녹성이 어떻다를 떠나서, 인간 사회 안에 있는 정체성과, 그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발버둥이 도시 가운데 들어나고 있는 한 예인것이다.  도시는 이러한 인간의 보호받고자 하는 간절함에서 시작된것이라고 볼수 있다. 

바벨탑 - 다른 의미에서 바벨시를 보면, 그 안에서는 
They said to each other, “Come, let’s make bricks and bake them thoroughly.” They used brick instead of stone, and tar for mortar. Then they said, “Come, let us build ourselves a city, with a tower that reaches to the heavens, so that we may make a name for ourselves; otherwise we will be scattered over the face of the whole earth.”
다른 것이 들어나는 것을 볼수 있다. 그들 가운데, 혁신이 일어나고, 높게 건물을 지을수 있게 되었다. 과학이나, 건축 기술의 성장은 그들로 하여금 교만을 나타낼수 있는, 그들의 정체성을 한단계 표현할수 있는 랜드마크를 만드는 것이 이루게 된다. 

소돔과 고모라의 경우, 도시가 죄악을 잉태하고, 그 죄악이 다른 모습으로 번져서, 모든 도시에 퍼진 것을 볼수 있다. 

도시는 강물처럼, 구성원들이 보호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더 나은 기회를 위해서, 모이는 곳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 그들 각자 각자의 여러가지 죄와, 욕망등을 가지고 모이는 곳이다. 

바울의 사역또한 도시 위주로 진행이 되었다. 도시에는 국가나, 민족을 이끄는 그리고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 내려지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교회에게는 기회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또한 청소가 필요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도시, 한국이라는 땅에서, 교회의 사역은 두가지로 나누어 질수 있다. 한부분은 급격하고, 무분별한 도시 개발에 떨어져 버린 도시의 빈부를 돌보는 수준에서 함께 하는 부분이 하나 있었고, 또 다른 한부분은 엘리트로써, 무분별 하게 도시의 영향력을 받아드려, 도시 개발에 성공과 함께  많은 것을 누릴수 있게 된 종교인들이 있다. 



이들은 진보와 보수 쪽에서 똑 같이 성경책을 들고, 한쪽에서는 개발을 비판하며, 가난한 자를 돌보고 있고, 한쪽에서는 흐름을 타지 못하고, 가난과, 비루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같은 종교인들을 손가락 질 하면서, 세상 깊에 들어가서 영향력을 갖게된 보수측이다. 

그리고 이 양쪽은 대화하지 않고, 양립이 되게 되었다. 

왜 교회가 이렇게 되었는가? 왜 도시에서 떨어진 사람들을 치료에만, 예방할수 있는 영향력은 갖추지 못한체, 신경을 쓰며, 길거리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가?  (SNS에서 지속적으로 비판적인 글을 올리고 있던지) 

왜 중요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 보다는 자기 집 평수가 넓어지고, 항공 마일리지와, 고급 레스토랑의 포인트만 높아지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주신 모델은 모든 믿는 자들이 예수님의 권위와 하나님의 영광아래 회복된 예루살렘 성 (시) 에서 함께 사는 것이다. 

그곳에는 가난한 자들이 없다. 그곳에는 하나님이 영광 그 자체이기 때문에, 엘리트? 영향력을 미칠 힘등이 필요하지 않다. 

크리스챤들이여, 먼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바로 성경앞으로 올바른 모습을 찾자. 

우리가 속한 도시는 엄청난 문제가 가득한 곳이다. 
또한 이곳에 하나님의 시선이 있으며, 해야 할 일이 많다.  

계시록 21장 1-5절을 보자. 

21:1 <새 예루살렘> 그후,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전에 있던 하늘과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21:2 그리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이 계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마치 신랑을 위해 단장한 신부의 모습을 보는 듯했습니다. 


21:3 보좌로부터 큰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서 


21: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이제는 죽음도, 슬픔도, 울음도, 아픔도 없으며, 모든 옛것들이 다 사라질 것이다.” 


21:5 그 때, 보좌에 계신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겠다! 내가 네게 하는 말은 진실하고 참되니 이것을 기록하여라.”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두려움이 가득하다, 죽음, 슬픔, 울음, 아픔, 옛것들로 가득하다. 

이곳을 회복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부르짖음이 들리는가? 



Transform the city? 

Transform our selves
transform our lifestyle
and have a proper view of the city of God. 


Then, only then, we can transform the city 

The negativity of 'tolerance'

We talk of a tolerant society.  Tolerance is one of the critical values of modern society that almost all multicultural states uphol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