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14 March 2013

애국심과 애향심

한국에 대한 애국심은 사라지고 애향심으로 바뀌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더 이상 한국은 나를 동포이지만 교포로도 보지 않기에..

영국을 사랑한다. 나의 나라이기에.

부모가, 신이 준 나라 한국
나와 나의 상황이 선택한 나라 영국..





201303 [싱가포르]




특별히 기회를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는데, 나의 비즈니스 멘토중 한명인 본의 싱가포르 파견으로 얼굴을 보러 간다는 핑계로 이곳 먼곳 까지 오게 되었다. 한국에서 생활 이후에 어디로 가야 할찌, 정탐을 해보는 차원이라는 핑계로, 말레이시아, 홍콩 그리고 이곳 싱가포르로까지 오게 되었다.

이곳은 역시 듣던데로, 잘 정리 되어 있고, 아세안의 중심 도시로써,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깨끗하고, 사람들도 말레이시아 보다 세련이 되었고, 좋아 보인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말레이시아 처럼, 다 종교의 여러가지 영향을 보게 되었다. 이슬람 사원들, 도교 사원, 불교 사원등, 중국 화교가 70% 가 넘기 때문에, 대만과 많이 비슷한 국가 분위기를 느끼게 되었다.




많은 다국적 기업과, 국제 기관이 상주해있는 이곳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 비해서, 많이 경직되어 있는 것또한 본다. 많이 삶이 편해 보이긴 하다만, 말레이시아가 좀더 인간적인 면이 더 있는 것 같다.




이곳에서 충분히 살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서울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여러가지 혁신이라는 이름하에, 신 기술, 신 개념들이 빨리 받아 질것으로 생각이 된다.



이곳에서 종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 낮다고 본다. 비록 주변에,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이슬람 국가 및 필리핀 내에 강경 이슬람 파, 등이 많이 있지만, 분명히, 이곳에는 이성이 좀더 통할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에 비해서, 사라 및 교육계 관련해서는 많이 이동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싱가포르라는 5백만 인구에 국한 된 도시 국가이기 때문에.


콸라룸푸 대 싱가포르 = 콸라룸푸가 아직 더 잠재력이 있어 보인다.

다음에는 자카르타에 가보고 싶다.



Friday, 1 March 2013

팬이 아니라.

이번에 한국에서 봤던 책중에 하나는 i am not a fan 이라는 책이었다.
한편으로는 기독교의 성장을 말을 하지만, 또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의 영향력 악화를 말을 하고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 기독교가, 전세계의 헤게모니를 이루라고 명하신 것은 아니지만, 빛과 소금의 역할을 말씀하신것은 있다.

빛과 소금.... 영향력이 있다. 또하나, 큰 량으로 승부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어떻게 봐야 할까.
교회라는 단위를 바라 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지혜의 의견 - 큰 교회니까 크게 사역할수 있지 않는가?)

이 책에서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복음을 값싸게 만든다라는 것이다. 영접 기도를 하면, 구원 받았습니다라고, 선언하는 것, 그것을 통해서, 진정한 구원의 의미를 생각하지는 않은체, 그것만을 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복음의 방법은 쉬운것이고, 어리석은 자도 이해를 할수 있는 것이지만, 복음의 가치는 가볍지 않다는 것.
하지만 현대인의 복음 전파 방식은, 복음의 방식의 문턱을 낮추면서, 복음의 가치까지 가볍게 만들어 버린다 말을 한다.

폴 와셔가 제기 하는 문제부분또한 그러하다. 사영리를 읆고, 잠시눈을 감고, 기도하고 구원 받았다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잘 못된 사상인것이라는 것..

이부분은 예수님께서 많은 자들을 치유하였지만, 많은 자들을 구원으로 초청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에서 볼수 있는 것이다.

니고데모라는 유대인의 지도자가 예수님께 찾아왔다. 그는 밤에 찾아 왔고, 사회적 지위와 많이 잃을 것을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예수님께 나와왔고, 구원에 방법에 대해서 물어 본다. 예수님은 그에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수 없다 라고 하시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의 의미에 대해서, 우린 깊게 생각을 해봐야 한다.

복음의 가치가 어떠하였는지, 어떠한 대가가 치루어져야 하였는지.  깊게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로마서 5장 6절을 보자. "우리가 아직 연약할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 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 뒤의 로마서 말씀을 보면,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생명의 열매를 말을 하고, 죄에는 죽은 자라고 말을 하고 있다. 다시는 육의 종이 되지 말라고 하며, 로마서 12장 부터 보면,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고, 이세대를 볻받지 말고, 하나님의 온전하고 선한뜻을 분별하라 말을 하신다.

로마서 12장 1절-13절

나도 어렸을때 가수의 팬도 되어 보았다. 그런 좋았던 마음이 식더라.
들었던 유행가가, 추억의 팝송으로 (대한항공에서 듣게 되고)...

우리의 구원이, 우리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러한 존재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나도 어렸을때 수련회때 그랬었어ㅏ.... 하하 어렸을때 나도 그렇게 열심히 믿었지.... 그렇게 말을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에게 예수님은 구주가 아니라, 동경의 아이돌이었다.
그들의 언어들이 그것을 더욱더 확인해주는 것이다.

나와 예수님의 관계가 추억으로 남아져버린것은 아닌가?

그러면, 그 관계는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을 해봐야 한다.
G
누가복음 9:23 KRV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예수님에게 우리는 팬이 아니다. 예수님에게 우리는 핏값으로 산 자녀들이다.

믿는 다른 것을 따른 다는 것이다.

조엘 오스틴, 조셉 프린스 등은 이것을 얘기 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위험한 것이라고 볼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팬이 되고 싶은 것인가? 

The negativity of 'tolerance'

We talk of a tolerant society.  Tolerance is one of the critical values of modern society that almost all multicultural states uphol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