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22 October 2011

애통하는 자는 복이있나니

마태복음 5장 4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것임이요”


Blessed are those who mourn for they will be comforted.



서론



사람들은 코미디를 좋아합니다. Stand-up comedy, slapstick, sitcom, 우리로 하여금 웃음을 유발하는 몸짓들, 말장난으로 우리를 즐겁게 기분좋게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위적인 웃음은 잠시는 우리에게 엔돌핀을 줄지라도, 우리의 영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예례미다 7장 34절 – 그때에 내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 기뻐하는 소리, 즐기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끊쳐지게 하리니 땅이 활폐하리라”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는 항상 기뻐해야 하는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쁨은 세상의 싸구려 기쁨 감정이 아닙니다. 회개하고 용서 받음 심령가운데 다가오는 하나님께로 부터 온 기쁨입니다.



주님을 깊게 만나기전, 엄마 몰래 만화책을 빌려서, 책상 서랍에 넣었습니다. 생전 처음 빌려본 만화책 (슬램덩크 였었는듯). 내가 중학생이 되어서, 만화책을 빌렸다는 사실과, 그 만화책이 내 눈앞에 보이는 책상 서랍에 있다는 사실에 하늘로 날아갈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금방 들켰습니다. 수련회를 다녀오는 기간에 만화방에서 연체 독촉 전화가 왔었고, 다행히 많이 혼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의 싸구려 웃음이 기쁨이 우리로 하여금, 슬퍼하고 애통해야 할때, 진정한 애통을 이루지 못하게 하고, 진정한 위로에 이르지 못하게 하고는 있지 않은지요?

이사야 61장 1절3절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 가 키이다.



우리는 시내산에서 근심하며 슬퍼할것인가? 시온산에서 근심하며 슬퍼할것인가?



희락의 기름과, 찬송의 옷, 화관의 – 즉 진정한 순수한 기쁨을 우리가 어디서 얻을수 있는 가요? 상한마음을 하나님앞에 가지고 오고, 시온에서 애통함을, 우리의 분통함을 내려놀때입니다. 시내산이 아닌 시온산.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온전히 털어 놓을때에, 진정한 기쁨이 우리 심령안에 내려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슬퍼해야 하는가?



(1) 우리 가운데 있는 죄성향때문에 슬퍼해야 한다.



고린도 후서 6장 9절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



그들의 죄로 인하여, 선한 훈계를 받음으로 상한 마음으로 근심하며 애통할때에, 그들은 하회개를 이르렀다.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간절하게 하였고 (what earnestness) 되돌아 가고자 하는

그들로 변증하게 하였고 (eagerness to clear yourselves) – 잘못에 대한 핑계가 아닌, 회복에 대한 reasoning

분하게 하였으며 (what indignation) – 상황이 아닌, 자신의 모습에

두렵게 하였으며 (what alarm) - 두려움

사모하게 하였으며 (what longing) -

열심있게 하였으며 (what concern)

벌하게 하였는가? (what readiness to see justice done)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 지는 것을 보고자 하는 모습.



회개치 아니한,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지 않은 자들을 보면, 다들 결국이 엉망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봅시다. 이 과정이 없었습니다

가인을 봅시다. 분하였지만,,,,, 이것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분함이 아니였습니다. 자신이 제사가 받아들여지지 아니하며, 아벨의 죽음에 대한 회개가 아닌 분한 감정이 아직도 남아있었습니다.

사울, 가룟유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고 회개를 이룬 예가 있습니다.

다윗왕입니다.



시편 51편






(시 51:1)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시 51:2)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시 51:3)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시 51:4)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시 51:5)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 51:6)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시 51:7)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시 51:8)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시 51:9)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시 51:10)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2)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 51:11)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 51:12)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 51:13)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시 51:14)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시 51:15)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시 51:16)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시 51:17)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 51:18)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시 51:19)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





이러한 애통함과, 통회자복함이 있는것이 시온에서 슬퍼하며 애통하는 자의 모습이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화관과, 기쁨으로 부어주신다.





시편 37편 4절에 “여호와를 기뻐하라 “Delight yourself in the Lord”





(2) 세상가운데 편만한 죄와, 불신 때문에 슬퍼해야 한다





Will and Grace를 보고 웃고 있는 것을 본다. 어떻게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공의와 창세 법칙을 진정으로 믿고 있다면, 그것을 보고 웃을수 있느냐고 의문하는 기독교 리더들이 있다.



악이 퍼지고, 미디어를 통해서, 실제 악 보다, 몇배로 부풀려 yeast (효모)가 발효하는 것 이상으로 빨리 퍼지고 있는 이 악의 모습과, 악인들의 회개 없음과, 이들을 향해 나단 선지자와 같이 선포하는 자가 적음에 우리는 슬퍼해야 한다.



세상을 향하여 애통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이사야 61장 말씀처럼, 우리에게 성령을 부으사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게 하시며, 보내시고, 마음이 상한자를 고치며,



고린도 후서 3장 3절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것이며,...





예례미아는 바벨론에 함락되기 전 마지막 시드기야왕 시대에 유대 백성의 회개를 회친 선지자였습니다. 아무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는 눈물의 선지자라는 이름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예레미아 애가를 보면, 타닥해버리고, 귀가 막혀버린 예루살렘을 향한 그의 애통함이 나타나있습니다.



매 장이 슬프다 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선민으로 옛 영광을 잃어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져버린 백성과 나라를 위한 그의 눈물과 애통함.....



애가 3장 48절 “처녀 내 백성의 파명을 인하여 내눈에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49절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50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시기를 기다리는 도다

51절 나의 성읍의모든 여자를 인하여 내 눈이 내 심령을 상하게 하는도다



56절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어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우지 마옵소서





너무 쉽게 세상과 함께 흘러가서 죄가 죄인지, 이것이 나쁜지 깨닫지도 못하고, 둔해진 우리가 아니라, 나의 이웃, 나의 형제 자매, 나의 교회, 나의 친구, 나의 동네, 나의 나라를 위해서 울고 회개하며 중보할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리즈 하월즈의 중보를 생각해봅니다. 그는 뉴스나 신문을 보면서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를 위해서 기도하였고, 중보하였고, 하나님의 역사함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결론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봅시다.

약 4: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약 4: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약 4: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성을 놓고, 애통해야 합니다. 또한 세상을 놓고 애통해야 합니다. 이러할때에 진정한 기쁨과, 위로가 있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는 단순한 웃음 – 황수관 박사의 그런 얇은 방식이 아닌, 깊은 회개가 합쳐진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선물인것입니다.



우리는 애통할때 애통해야 합니다...

The negativity of 'tolerance'

We talk of a tolerant society.  Tolerance is one of the critical values of modern society that almost all multicultural states uphold ...